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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piens Apr 18. 2024

문득 찾아온 그

-심비대


집으로 걸어가는 길,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을 때 시야에 들어온 우편함, 그 사이로 삐져나온 하얀 봉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다가가 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 겉표지에 쓰여 있는 건강검진 결과지라는 글귀를 확인하고는 우편물을 챙기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집 안으로 들어온 나는 귀찮은 듯 봉투를 식탁 위에 던져놓았다. 옷을 갈아입고 물 한 잔을 마시며 좀 전에 올려둔 우편물을 아무 생각 없이 열어보았다.


‘심비대, 가까운 병원에 가서 검사받으시길 바랍니다.’


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어!’


나는 다시 결과지를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 다른 부위에는 별다른 이상소견이 없었다. 평범한 일상 속 잡음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왜 심장이 비대해졌지?’


라는 의문과 함께 네이버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공황을 겪고 있는 터라 가쁜 숨, 어지러움, 식은땀과 소화불량이 있어도 공황의 증상과 갱년기 증상이려니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뇌 속은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생각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프리랜서라 강의를 마치고 내과에 방문할 요량이다. 여름이지만 조금 흐린 날씨로 기분 좋은 바람이 옷 사이사이 스치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한 손에 든 가방이 조금은 부담스러웠지만,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거리의 한산함과는 달리 뇌 속은 여러 생각으로 무게감이 가중되고 있었다. ‘심장초음파를 해봐야겠지. 이상이 있다고 하면 어쩌지?’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듯 이어지고 있었다. 문득문득 찾아드는 불청객과 같은 생각의 파편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눈덩이가 되고 있었다.


살다 보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손님들은 어느 날 갑자기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어떠한 과보로 인해 일어나는 일들을 우리는 불현듯 찾아드는 불행으로 맞이하거나 받아들인다.


그런 생각을 하며 조금은 마음의 무게를 내려놓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들어섰다. 걸어오다 보니 어떠한 병이든 내게 찾아온 손님이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잘 대접하고 보내리라. 혹시나 함께 있고 싶어 한다면 굳이 내몰지 않으리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병원 안으로 들어섰다. 진료를 위해 접수를 하였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터라 병원 로비는 한산했다.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칼럼을 포스팅하기 위해 블로그를 클릭하였다.


“고영희 님, 들어오세요.”


생각보다 빨리 이름이 불렸다. 서둘러 클릭 버튼을 누르며 진료실로 들어섰다.


짧은 설명과 함께 진료실을 나왔다. 심장초음파를 하기 위해 검사실로 향했다. 한참이 흐른 후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대기실 앞에 앉아있다. 판독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이름이 불렸고 진료실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어, 심장이 비대해져 있어요. 하지만 물이 차거나 혈액이 역류하지는 않아서 괜찮습니다. 고혈압인 경우, 간혹 심장이 비대해지는 사인이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소리가 정적을 깨며 나에게 전해지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찾아온 손님이 잠시 머물다 인사만 나누고 가는 듯했다. 진료실을 뒤돌아 나오면서 잠시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그렇게 손님을 떠나보내고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또다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분명 조금 전 거리와는 다른 거리를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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