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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piens Apr 24. 2024

인생의 재편집

-부재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중년의 여성이 책을 보고 있다. 그러나 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앞 좌석에 앉아있는 아빠와 딸의 이야기에 신경의 촉수는 뻗치고 있었다.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 아빠라는 존재가 저런 것이구나!’


그녀는 아빠라는 그림자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기억의 모퉁이에 어렴풋하게 자리하고 있는 희미한 아빠라는 존재, 그녀에게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퍼즐이 되어버렸다. 자녀와 남편의 대화를 들으며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소환하고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자아를 만난다. 아빠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희미했고 그녀에게는 그 어떤 의미도 없었다. 당연한 무엇이 되어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며 그녀의 앞에 놓인 환경에 순응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와의 기억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순간, 남편과 딸의 장난기 섞인 대화 속에서 부러운 감정이 생성되고 있었다.


‘부럽다. 너는 아빠가 있어서’


그녀는 딸의 말속에서 아빠라는 존재 의미를 어렴풋하게나마 느껴본다.


나에게도 아빠가 있었다면, 아빠와의 상호작용이 존재했다면, 나의 심리상태는 지금과 달랐을까? 정서적 결핍이 아닌 넘치는 사랑을 알았을까? 그래서 누군가에게 다시 내어주는 방법을 미리 알았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본다.


부재의 의미는 그녀에게 당연한 것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침묵에 익숙하고 길들여져 있었는지 모르겠다. 항상 혼자였고 고요 속 자유를 즐기는 성향으로 자라났다.


차 안에는 웃음소리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두 장면이 오버랩이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내가 너였다면,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존재했다면, 아빠의 손길, 숨길을 느껴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일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심코 입 밖으로 내뱉는다.


“아빠가 이런 존재구나! 부럽다. 딸아, 너는 아빠가 있어서.”


딸을 부러워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약간의 격앙된 분위기가 차 안의 웃음소리를 잠재울까, 그녀는 미소를 짙게 지어 보였다.


아무도 그녀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했다. 완벽하게 가면을 쓰고 순간을 모면했다. 하지만 그녀는 가면 뒤에 숨어있던 어린 시절의 자아를 토닥이고 있었다. 괜찮다고, 잘 살아내었다고, 말하며 자기의 내면을 마주하고 있다. 그날의 웃음소리는 그녀에게 부재와의 만남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재편집하고 있었다. 다시 꺼내 보았을 때는 조금은 따뜻한 그림으로 그려지길 바라보며. 그렇게 아빠와의 추억이 덧칠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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