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을 살다가 서로의 삶 속에 들어온 우리. 삶이 그렇듯 매 순간 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수많은 인연이 생성되고 소멸한다.
그러니까 이십이 년 전 그는 나의 삶 속으로 불현듯 들어왔다. 그날 그 순간부터 다양한 색을 뿜어내며 얽히고설키며 수많은 무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때론 지독한 인연으로, 때론 희미해지다가도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그는 항상 내 곁에 머물며 무언가를 주고 싶어 했다. 가끔은 귀찮기도 했지만, 그러한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의 방식에 기대게 되고 또 하나의 사슬이 되어 얽매이게 되기도 했다. 6년이라는 시간을 매일 만났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와는 세상에서 처음 맺은 나의 사랑하는 첫 남자였다.
그와 맺은 인연은 이제 25주년이 훌쩍 넘어가고 있다. 그는 처음 내게 다가왔을 때처럼 변함이 거의 없다. 그를 통해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웠고 사랑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리고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도 생겼다. 더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게 해 주었다. 그와의 시간을 통해 나는 나를 바라보고 나의 부족함을 알게 해 주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이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가? 는 삶의 질을 바꿔놓는다. 우리는 매일 다투기도 했고,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지만, 그러한 과정을 통해 새살이 돋아나듯 서로를 성장시키며 진짜 성인이 되어갔다.
수많은 시간 속 존재했던 우리의 행위와 변덕스러운 감정들을 순환시키는 사이, 우리는 점점 서로를 알게 해 주었고 각자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게 되었다. 그가 나에게 보내는 배려를 통해 나는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을 배우기도 했다. 그가 보내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나는 내가 사랑이 부족한 사람임을 알게 해 주었다.
눈먼 나를 세상을 바라보게 해 준 은인과도 같은 존재다. 그는 매일 내 곁에서 묵묵히 호흡하고 있다. 떨어져 있어도 그는 매일 내게 다가와 토닥이며 스쳐 간다. 그 에너지를 받으며 나는 오늘도 사랑을 품는다.
“여보, 당신 좋아하는 맛밤 사다 놓았어.”
올해부터 타지방으로 발령되어 떨어져 지내고 있는 우리, 다음 주에 만나는 나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기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항상 나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사람이다.
누군가로부터 전해지는 향기는 다양하다. 하지만 항상 일정한 향을 내뿜어 나를 생기 있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감사한 일이다. 나도 그에게 다가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처럼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환하게 피어나는 감각처럼 그렇게 존재하길 바라본다.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