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살 대학 신입생 때 지금의 집사람을 만났다.
친구처럼 편했고, 마음이 잘 맞았다.
우리는 22살에 연애를 시작했고, 26살에 결혼했다.
결혼은 했지만 넉넉한 여유는 없었다.
일찍 결혼한 탓에 돈을 모을 시간이 없었고, 우리는 부모님 집에서 약 3년을 함께 지냈다.
그 후 겨우 마련한 23평 작은 아파트로 독립을 했고, 27살에 큰 아이가 태어났다.
우리에게 신혼이라는 시간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동갑이어서 그런지 말다툼도 많았고, 성격 차이로 부딪히는 날도 많았다.
하지만 집사람은 늘 알뜰했고, 나는 외벌이로 버티며 대출금과 사교육비 사이에서 하루하루 살아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둘째가 세 살쯤 되었을 때 우리는 더 큰 집으로 이사했다.
대출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집에서 우리는 아이들을 키우고 대학 보내고, 첫 직장에 입사시키는 순간까지 함께 했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가장 많이 담긴 집이었다.
내가 4년 동안 해외 주재원으로 베이징에 혼자 있을 때도 집사람은 두 아이를 잘 키워냈다.
급여가 좋을 때도 있었고, 회사 사정이 악화되어 급여가 크게 줄었던 시기도 있었다.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마이너스통장을 돌려 막아야 할 때도 많았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사교육비였다.
중학교부터 시작된 비용은 고3, 재수 시절에 정점을 찍었고 그때마다 나는 더 깊은 대출로 버텼다.
노후는커녕 생존이 먼저였다.
그래서 2023년, 나는 독한 결심을 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일, 가장 높은 연봉의 회사에 도전했고 운 좋게도 그 기회를 얻었다.
그 2년 동안은 정말 행복했다.
가족 모두가 오랜만에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외국계 회사는 냉정했다.
글로벌 구조조정으로 인해, 나는 지난 5월 갑자기 회사를 떠났다.
한동안 집사람에게 말하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 말도 듣지 않았지만, 내 표정만 보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단 한마디만 했다.
“뭘 걱정해. 다시 취업하면 되지. 잘 될 거야.”
그 이후로 집사람은 취업 이야기도, 돈 이야기도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늘 하던 대로 나를 응원하고 있을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집사람이 고맙고, 더 고맙다.
평생 함께할 내 가장 오래된 친구 같고 가장 든든한 동료 같고 가장 편한 사람이다.
삶의 굴곡 속에서 나와 함께 버틴 사람은 결국 이 사람 한 명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이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