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가 어딘데?

발급번호-005

by stamping ink

익숙함이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단어이다. 그 반대어로 미숙함이라는 단어는 불안과 어색한 마음을 표현하기에 적당하다.

나의 미숙함 중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 '찾기'이다.

부모님 탓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저주의 우성인자를 제일 많이 내려받은 나로서는 새로운 목적지에 홀로 도착한다는 것은 어려운 미션이다.

길치라 불리는 나는 가본 길도 한결같이 새롭게 맞이하는 길의 재해석 능력이 있다. 남들이 보면 이것도 능력이라면 답답함에 고구마 걸린 듯 가슴을 쳐대게 만드는 능력이다.

극복하기 위해 몸부리 치는 나의 미숙함의 파생어, 길 설명하기.


업무 중 대표번호로 걸려오는 문의사항엔 서류요청을 위해 방문하려 사무실 위치를 묻는 내용이 있다.

그들의 질문에 던전을 헤치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나와 같은 종족들은 무수히 많다.


초급 레벨, "몇 번 출구로 나가면 될까요?"

대강의 위치는 안다.

인근 지하철역 출입구부터 시작하여 건물의 방향만 알려주어도 해결

스스로 행인을 이용해 질문을 하며 목적지에 도착한다.


중급 레벨, "건물 입구가 안 보여요."

도로변 건물은 쉽게 찾는다.

도로와 경계선이 사라지고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 주차장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좌회전 우회전 생각하지 말고 앞만 보고 걸어오면 되는데 자신의 능력을 망각한 채 길을 잃는다.

한참을 헤매다 결국 다시 연락이 온다.

건물 앞에서 어떻게 들어가냐는 질문을 받은 지 20분 만에 같은 질문을 한다.

같은 위치에서 시간만 하염없이 바뀌어 간다.


고급 레벨, "어디라고요?"

목소리가 두 개로 들려온다.

수화기의 목소리와 사무실 밖 복도에서 들리는 소리가 두 개로 갈라져 한번에 들려오고 있는 중이다.

듣다 못한 사회복무요원이 일어나 사무실 문을 열면 영락없이 전화기를 손에 든 채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등잔 밑까지 찾아온 것이 어디인가.


보스급, "30분째 못 찾겠어요."

안타깝다. 화상통화만 된다면 3D 지도처럼 그림을 펼쳐 놓고 리모컨 조정하듯이 무사히 도착하게 만들고 싶지만 오작동으로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뫼비우스의 띠를 그린다.

방법이 없다.

최대한 건물 앞까지 유도를 한 후 데리고 와야 한다.

치명적인 안타까움을 그가 서류 발급 완료 후 무사히 귀가에 성공할지까지는 알 수 없다.


동족인지라 그들이 안쓰러워진다. 길을 헤매는 수많은 레벨의 민원인들을 보며 속이 탔을 마음에 시원한 음료라도 건네드린다. 멋쩍은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갈 때 길을 설명해 줄 능력을 가진 나에 대한 우월감을 조금은 망각한다. 미숙한 나의 위로이자 그들보단 나은 나 자신의 자부심에 어깨가 펴졌다.


하루가 길었다. 퇴근 후 저녁을 하기 싫던 참에 남편의 출장에 딸아이와 오랜만에 데이트다.

벌써 시간이 10분이나 지났는데 딸은 보이지 않는다.

'또 늦는군.' 눈살이 찌푸려졌다.

"엄마!!!"

낯익은 고성이 등에 꽂혔다.

"아이 참, 3번 출구에서 보기로 했었잖아. 3번!"

몇 번 와본 지하철 입구 1번 출구 앞에 선 채 딸을 원망하고 있던 나였다.

어쩌면 내가 최강 보스일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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