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의 식사 8편
남편은 나에게 맛있는 생면 파스타를 소개해주긴 했지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삼겹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특정한 삼겹살이다.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진 잘 모르겠지만 삼겹살에 대해 상당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릴보다는 돌판을 근고기보다는 얇은 삼겹살을 좋아한다. 그외에도 너무 많은 조건들이 있어서 그부분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자신이 엄중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 선별한 삼겹살집만 간다. 사실 나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삼겹살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한국인으로서 불경한 발언일 수 있지만, 이것이 진실이다. 물론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과거의 내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이다.
어렸을 때 먹던 엄마 밥은 대체로 채식 위주의 식단이었다. 나는 소화도 잘되고 맛있는 엄마밥을 좋아했다. 특히 삼겹살은 별로였다. 반면에 언니는 삼겹살을 좋아했다. 언니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엄마는 삼겹살 구이로 언니를 응원했다. 나에게는 몹시 괴로운 날들이었다. 어떤 때는 고기가 너무 먹기 싫어서 삼겹살 옆에서 구워진 야채나 한두 점 집어 먹으며 식사를 마쳤다. 이런 나를 육식주의자이자 삼겹살 중독자로 만든 것은 남편이다.
"삼겹살 말고 다른 거 먹자 제발!"
잘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남편과 나의 첫 번째 싸움도 삼겹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연애 초기에 남편은 자꾸 삼겹살을 먹자고 했다. 전국 각지의 삼겹살 맛집에 나를 데려갔다. 남편은 단순히 최고의 것을 나와 공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로서는 조금 힘들었다.
의외로 내가 삼겹살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부추무침 때문이었다. 남편이 어느 날 여기는 정말 맛있다고 말하면서 새로운 음식점에 데려갔다. 그곳에서 같이 구워 먹으라고 나온 부추무침이 있었다. 그냥 생으로 먹었을 때는 평범했지만 삼겹살 옆에서 구우니 완전히 다른 맛이 났다. 양념이 졸아들면서 올라오는 부추의 진한 단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특히 좋았다. 처음에는 부추무침 자체가 맛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맛은 삼겹살 기름 없이는 나오지 않는 맛이었다. 이것이 나의 삼겹살 랩소디의 시작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부추삼겹살은 남편이 고심해서 고른 메뉴였다. 야채 트로이 목마로 나를 공략한 것이었다. 이런 남편의 전략으로 고수, 간장게장, 양대창, 김말이, 우니 등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는 다소 괴로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남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 덕분에 나의 식생활이 다양해질 수 있었다. 새로운 맛에 늘 도전하게 해주는 남편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남편의 다음 숙제는 내가 절대 먹지 않는 순대국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