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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자구 Oct 29. 2022

닭갈비와 감자탕

사랑하는 사람과의 식사 9편

 남편과 나는 둘 다 먹을 것을 좋아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파스타를 제외하고는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음식은 거의 없었다. 나는 채식, 해산물을 좋아하고, 남편은 육식을 더 선호했다. 그래도 많은 끼니를 함께하면서 공통분모가 점차 넓어졌다. 삼겹살을 싫어하던 내가 삼겹살을 좋아하게 되었고, 남편은 가리비구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괜찮을 거야 아마도?”


 식성도 식성이지만 우리 부부는 성향도 좀 다른 편이다. MBTI로 말하자면 나는 계획형 J에 성격도 급한 편이다. 반면에 남편은 즉흥형 P에 느긋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언뜻 안 맞을 것 같기도 한데 지내보니 서로 보완적인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어떤 일을 부지런하게 계획하고 그 일정에 맞춰서 열심히 일한다. 그러다가 급작스럽게 체력이 저하되어 목표 달성을 못하기도 한다. 그걸 일사불란하게 완성해 주는 게 체력 좋은 남편이다. 나와 달리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다.


 우리의 식성이 많이 닮아가고 있지만 서로 굽힐 수 없는 메뉴들이 있었다. 그게 바로 닭갈비와 감자탕이다. 남편은 닭갈비의 양념이 싫다고 했다. 나는 고기도 별로 없는 감자탕의 뼈다귀를 귀찮아한다. 내가 닭갈비를 먹으러 가자고 하면 남편은 ‘알겠어.’라고 하지만 가기 싫은 게 느껴졌다. 반대로 나도 감자탕을 먹으러 가자면 가기 싫다. 결과적으로 가긴 가는데 둘 다 즐거울 수는 없었다. 맛있게 같이 먹을 수 없는 메뉴가 있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여긴 좀 맛있는 거 같아.”


 최근에 우연히 집 근처 닭갈비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늦은 저녁시간에 갈 수 있는 곳이 그 가게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다. 처음에 남편은 푸짐하게 나온 닭갈비를 앞에 두고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양이 많아서 내가 다 먹을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던 찰나에 한입 먹기 시작한 남편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닭갈비는 사라지고 남편이 해맑게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남편이 나에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나를 불러 세웠다. 진지한 얼굴로 이제는 닭갈비가 좋다고 했다. 그때의 양념은 별로고 지금의 양념은 맛있다고 한다. 이런 남편의 모습을 보니 나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감자탕 맛집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감자탕을 먹으러 가자고 하는 날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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