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세상의 전부일 때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모든 것을 따라 한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애 앞에서 찬물도 못 마신다'라고 했다.
즉 아이 앞에서 나쁜 행동, 나쁜 말을 하면 아이가 그대로 따라 하니 조심하라는 뜻일 거다.
그걸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나오는 엄마의 말투, 표정을 매번 숨길 수는 없었나 보다.
어느 순간 큰 아이는 내가 자신을 혼낼 때 했던 말투와 표정으로 동생에게 똑같이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어, 저건 내 말투인데' 싶어 움찔했다. 남편도 친정엄마도 모두가 "OO가 하는 행동이 너랑 똑같네"라고 말했을 만큼 나였다.
둘째는 잘 그런 것 같지 않은데 첫째는 유독 다른 사람의 말투, 표정, 행동을 보고 따라 하는 걸 좋아했다. 영화 속 주인공의 표정을 똑같이 해본다든지 말투와 억양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하였다. 그런 아이니 매일 보는 엄마의 행동, 말투, 표정도 유심히 살폈던 것 같다.
큰 애가 무언가 나에게 묻고 대답을 들은뒤 돌아서서 내가 했던 제스처나 표정을 따라 하는 걸 여러 번 목격하기도 하였다.
이런 아이인 것을 나는 최근까지 아이 앞에서 한숨짓고, 인상 쓰는 일이 잦았다.
다시 가게에 출근을 하게 되면서 예전처럼 친정엄마의 도움 없이 오롯이 주부로서 해야 할 집안 일과 일터에서 근무해 나가는 것이 힘에 부쳤는지 작은 일에도 아이들에게 짜증 내고 혼내는 일들이 많았다. 남편에게도 종종 "요새 아이들을 보며 웃어준 적이 없는 것 같아"라고 말할 만큼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피곤하고 화가 나 있는 엄마로 비쳤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내일 보다 오늘, 다음보다 지금'이라는 책으로 저자가 제주로 내려가 살며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고양이 두 마리와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을 그려낸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내 삶의 소소한 행복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그때 내 눈엔 아침에 일어나 부지런히 숙제를 하고 있는 두 아들이 보였다.
알람 시간에 맞추어 잘 일어나 주었고 챙겨준 아침 식사를 깨끗이 먹고 오늘 할 숙제를 알아서 척척 잘해주고 있는 두 아들들.
내 삶에 기꺼이 찾아와 준 두 아들들과 함께하는 이 순간들이 나의 행복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매일 지나가고 있는 이 순간순간에 아이들은 나에게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주는 존재라는 걸 다시 깨우치게 해 주었다.
행복이 매 순간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갑자기 아이들에게 내뱉는 말투들이 부드러워졌다. 전에 같았으면 벌써 눈썹이 치켜떠지고 날카로운 말투가 나왔을 텐데 이상하게 그래지지 않았다.
큰 아이가 집에 오며 점퍼가 바뀌어 시간이 오래 걸려 집에 늦게 왔다고 투덜거렸지만 "아 그랬어? " 하고 웃어넘기는 나를 보며 징그러워졌던 큰 아이의 표정이 풀어지며 함께 피식하는 걸 보았다.
'아, 내가 웃어 보이니 아이도 그 일이 그렇게 짜증 날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는구나. 이제 아이 앞에서 되도록 찡그리지 말아야지, 별일 아닌 것에 웃어넘길 수 있다는 걸 알려줘야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진작 아이들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줄걸, 내가 차분히 얘기해 주니 아이도 부정적인 감정을 금방 가라앉히는데 그동안 왜 그걸 몰랐을까 반성하였다.
너무나 당연해서 소중하다는 걸 잠시 잊게 되지만 행복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삶에, 매일 비슷한 일상에 숨어있다는 걸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달은 것 같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웃는 모습, 힘들어도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배우며 자신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웃으며 꿋꿋이 이겨내는 걸 배워나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