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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아 Sep 12. 2024

다시 우리 가게가 생겼다.

장사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남편은 망하고 난 뒤 1억이나 빌려줬던 아저씨를 찾아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고 그분은 우리 보고 도망가라고 했다고 한다.


'도망', 예전엔 야반도주도 참 많았다 하던데 그걸 우리가 해야 하는 건가?...


 내가 어릴 적 언젠가 한 번 '도망이라도 갔으면..' 하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부모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빌린 돈이 많았는데 2부 5리, 어떤 건 3부 이자를 받는 빚까지 있어 벌어서 이자 갚기에 바빴다.

 빚더미에 앉아 생활했기에 빚독촉 전화가 하루가 멀다 하고 울려 수건으로 전화기를 덮어두거나 아예 코드를 빼놓는 날도 많았는데 그렇게 전화받기를 미루다 보면 어느 날 불쑥 반지하 우리 집 현관 앞에 사람들이 찾아오 하였다.


  그래서 차라리 우리 엄마, 아빠가 도망이라도 가자고 했다면 지금보단 괜찮은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도망 안 간 우리 부모님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면서 막상 도망가라는 말을 듣자 선뜻 그러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빚을 진채 살아가는 게 과연 행복할까? 우리 아이들과 도망가서 아무도 찾지 못하게 숨어 산다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나에게 이런 상황이 닥쳐보니 아마 우리 부모님도 나와 언니 때문에라도 도망가지 못한 건 아니을까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에게 도망가라고 했던 아저씨는 천안에 있는 가게 하나를 인수할 건데 나와 남편이 내려가서 운영하라고 하였다. 운영하면서 돈을 갚아 나가라고. 우리에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다만 당장 내려가 살려니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어린이집에 빈자리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기에 아이들은 잠시 부모님께 부탁드려야 했다.


 그렇게 망하고 한 달 만에 나와 남편은 천안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이름만 사장 가짜 사장이 되었다.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는 난 처음엔 몰랐다.


 진짜 내 가게보다 더 신경을 써야 했다. 매출이 안 나오면 열심히 안 한 것처럼 보일까 신경 쓰였고 직원들에게 지시를 하면 진짜 사장도 아니면서 시킨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괜히 껄끄러운 느낌도 들었다.

 또 천안의 이 가게는 왜 이리도 '내가 누군데!' 하는 손님들이 많은지 챙김 받고자 하려는 분들이라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사장을 찾아 그때마다 가서 손님께 설명하고 사과하고 해야 했다. 거기에 바쁜 주말이면 온갖 컴플레인들이 걸려 해결하기 바빠 '제발 오늘은 아무 일 없길, 무사히 지나가길' 기도하며 나올 만큼 문제상황에 부딪치고 해결하는 일에 적응하는 데까지 마음고생도 좀 하였다.


 코로나가 심각하던 시기에 운영을 맡게 되었지만 그래도 룸 많고 홀 테이블 간격도 거리가 있어 그랬는지 감사하게도 손님들은 줄지 않고 오히려 점점 늘어났다. 처음 겪는 재난상황에 나라에서 내려오는 지침들을 따르고 변경될 때마다 우왕좌왕도 했고 협조 안 해주시는 손님들 때문에 난감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들과는 반년 정도 지나서야 같이 살 수 있게 되었지만 일하느라 거의 시간을 보내지 못하여 죄책감을 매번 느껴야 했고 바쁜 우리 대신 아이들을 돌봐주러 천안까지 와주시는 친정 엄마께는 죄스러움을 느꼈지만 덕분에 빚을 갚아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2년 반을 사장 아닌 사장으로 역할을 하며 나 스스로도 손님들께 다가가는 법도 많이 배웠고 직원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는 법을 알게 되었다.


 사장이라고 지시만 할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지금 무슨 문제가 있는지 많이 대화하고 어울리면서 깨닫고 이해하여 최대한 문제 되는 상황을 해결해 주려고 노력고 덕분에 직원들도 사장으로서 우리를 믿고 신뢰 었다.


 가게를 운영한다는 건 음식 하나 정성껏 준비하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신경 쓸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어느 날은 직원 때문에 때로는 날씨에 따라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음을 아니면 코로나 같은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이 일어나 가게에 큰 위기가 다가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게를 운영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님을 진정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천안에서 많은 경험을 쌓다가 마침내 우리는 경기 광주에 작은 가게 하나를 내게 되었다.


 그렇게 망한 지 3년도 안되어 다시 우리만의 가게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빚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지만 '희망'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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