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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Su Feb 27. 2024

드디어 시작되나요,못생김 찾아내기

잠자리를 찾아든 아이의 눈이 벌겋다. 

꿀꺽 삼킨 무언가가 목에 걸려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아이는 돌아누웠다. 말을 걸까말까 잠시 망설였다.

잘못하면 사춘기의 지뢰를 밟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젖은 눈꺼풀을 보자니 차마 모른척은 할 수 없어 몸을 돌려 눈을 마주하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못생긴것 같아. 손톱 색깔도 이상하고 모양도 마음에 안 들어. 눈도 별로 안 크고, 쌍커풀도 없고."


나는 열심히 대답을 나열했다. 

너는 얼굴형도 달걀형이고, 속눈썹도 길고 이마도 예쁘고, 손가락도 길고 손톱모양도 넓적하지 않고 늘씬하고, 코도 오똑하고 입술도 예쁘고, 몸의 비율도 좋다고. 엄마 아는 사람들은 다 너 예쁘다고 한다고. 


"그거야, 모든 엄마들은 자기 아이한테 그렇게 말하는 고슴도치니까 그런거지. 엄마도 그런거잖아!"

아이는 벌컥 하고 울음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나는 외모평에 조금은 솔직하다. 

내 아이라도 못생길때는 못생겼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남에게 인사치레로 "예쁘다'라는 단어는 어지간해선 자연스레 내뱉지도 못하는 성격이다. 예쁘다라는 말을 대신한 말로 보통 하는 귀엽다라는 표현에도 야박한 편이다. 굳이 그 어떤 말로도 외모에 대한 말을 비치지는 않는다. 물론 너무 에쁜 아이는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되니, 별수 없이 나도 어느정도 속물인 본능추구형 인간일뿐이다. 


나는 내 아이의 스무살이 기대된다. 막 성인이 된 풋풋한 스무살의 나이, 화장을 시작하며 감춰져 있던 보물같은 것들이 슬슬 뿜어져 나오는 그 시기를 상상하다보면 싱그럽기 그지없다. 

흐뭇함에 웃음이 터져나온다. 아직 그 나이가 되려면 6년이라는 세월이 남았음에도.

얼마나 예쁜 아가씨가 될지가 눈에 훤하다.잘 낳아놨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이미 나는 어쩔 수 없는 고슴도치 맘이었던게 분명하다고 혹자가 말한다면 뭐, 굳이 할 말은 없다. 



한 시간이 넘는 달램과 설득, 짜증과 눈물이 섞인 밤이 지나가고 다음 날의 일정도 흘러갔다. 

학원에서 귀가한 아이에게 올리브영 데이트를 신청하고 손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학생의 화장을 지지하지 않는 편이지만, 사춘기 요맘때의 외모 콤플렉스는 나도 지극히 겪어봤으니 다른 친구들 다 한다는 화장, 옅게 하루이틀 기분낼 때 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 마음 먹었다. 

사실, 어제밤을 지나고 변한 마음이다. 굳이 반대해서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으니까. 

게다가 사주었다고 어울리지 않는 떡칠 화장으로 나다닐 성격의 아이톡 풀려있다. 

다루기 쉬운 브라운 계열의 아이라이너 펜슬과 입술에 톡톡 찍을 립틴트와 피부를 보송하게 할 파우더팩트, 티 안나는 네일케이 제품을 사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학원 가기 전, 방에 있던 아이를 불러 가볍게 단장을 시켜주고 보냈다.

조금만 해 주었는데도 예쁘긴 하다 .역시 나는 고슴도치맘인가.

그 날 이후 아이는 외모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 

그냥 그 날밤은 투정을 부리고 싶었나보다. 넉넉하게 허용하는 엄마의 말을 그저 필요로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날 밤 바로 풀어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루나 미룬 나를 반성했다. 



사실, 아이의 첫 립틴트는 이미 한 달전에 사 주었다. 

아이가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면, 첫 립제품은 아이 손을 잡고 백화점에 가서 기념이 될만한 것으로 선물하겠다고 늘 생각을 해 왔다. 


 "엄마, 이제 립스틱 하나 선물받고싶어."  


흔쾌히 외출준비를 하고 이동하는 내내 우리 둘은 조금은 들뜬 마음이었을지 모르겠다.

내 딸에게 엄마로서 처음으로 선물한 색조 화장품은 샤넬 립틴트였다. 열네살 소녀에게 과한 브랜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꼭 그러고 싶었다. 

물리적으로는 제품이지만 내가 진정으로 선물하고팠던 것은 엄마와의 '처음'이었다.

엄마와 단 둘이 백화점에서 화장품 구경을 하고, 함께 고민하며 색상을 고르는 그 시간, 그리고  예쁘게 포장된 첫 선물의 이미지, 그 추억을 아이의 가슴에 선물하고 싶었다.


아이는 아직까지 그 제품을 개봉하지 않았다.

과연 어떤 날 ,아이가 이 립틴트를 톡톡 찍어바르고 외출할련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날은 아이 자신에게 유난히 특별한 날이지 않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이 콩닥 거린다. 



지금 이 글은 하마터면 화장하는 것을 무조건 반대만 하는 꼰대엄마가 될 뻔한 위험한 밤을 되새기며 쓰는 글이다.  

중요한 건 어떤 문제에 있어서든 아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본디의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눈치없이 신호를 못알아차리지도 말고, 귀찮다고 모른척 하지도 말아야지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중이다. 

잘했다, 잘했어. 

서툰 엄마인 내게 말해주며 칭찬한다. 하루 늦었지만 그래도 늦게라도 그 마음 달래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고 안도한다. 

어쩌면 어느날부터는 내가 먼저 아이를 꼬셔댈지도 모르겠다. 화장해주겠다고 얼른 화장대에 좀 와서 앉아보라고 아이 얼굴을 메이크업 연습용으로 자꾸 빌리게 될는지도. 


다른 건 몰라도 아이가 스스로에게 자긍심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좀 더 단단해지고 쉽게 물러지지 않는 자존감을 잘 키워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처럼 너무 오래 돌고 돌아 자존감 회복에 뒤늦게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내가 그렇게 아이를, 잘, 키워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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