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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Oct 30. 2022

'돈'에 대한 사색

 돈, 하면 떠오르는 세 사람이 있다.

 먼저 달서구 쪽에서 잘 나가는 미용업자인 40대(아마도) 여성이다. 선입견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풍기는 에너지나 향기가 있는데 그녀에게선 돈 냄새가 나도 너무 났다. "내가 돈으로 보이는 거 아냐?"란 생각이 들게 할 정도로, 돈 앞에서 지나치게 살살거렸다가 벌벌 떨었다가 했다.

  그래서 그녀를 움직이긴 너무도 쉬웠다. "저 이번에는 그거 안 사려구요." 한 마디면 됐다. 그럼 그녀는 벼랑 끝에서 자기 손을 놓으려는 사람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듯 굴었다. 아쉬워하고 분노하고 마구 아양을 부렸다. 

 난 그런 그녀가 안타까워 보이기까지 했다. 돈은 버는데, 그 돈을 쓸 시간도, 마음도 없어 보이고 사람과 만나 따뜻하게 교류해 본 적도 없어보이던 그녀... 당장 내일이라도 죽게 되면 아쉽지 않을까? 나라면 아쉬울텐데...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두 번째는 작년까지 성당에 계시던 젊은 남자 신부님이다. 그는 자신의 목표가 매달 통장의 잔고를 0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매달 저축하고 집을 사고, 1억이든 2억이든 억! 소리 나게 벌어보고 싶은 게 보통 사람들 마음인데, 잔고를 0으로 만들다니... 원치 않게 통장이 텅장이 되어 버리는 나로서는 그의 의도적인 텅장이 너무도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듣기로는 잠바도, 운동화도 하나만 신고 입어서 너덜너덜해지게 해 다닌다고 하는 신부님. 그런 분이니 아마 0으로 만드는 것이 물건을 사들이고 무언갈 향유하기 위한 것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그 분은 성당에서 밥도 집도 다 나오지 않는가? 라고 생각도 해 봤는데, 그래도 매달 옷이나 화장품도 사야 하고 영화도 봐야 하고, 얼마간 좋은 구경도 해야 하는 나로서는 밥과 집이 보장된다 해도 돈을 조금은 모아두고 싶을 것 같았다. 내가 넘볼 수 없는 경지였다.

  기억에 남는 세 번째 사람은 회사 동료 L이다. 그녀는 50대 독신 여성으로 시 낭송을 즐겨하고 자리에 시집이나 철학책이 잔뜩 있는 여성이다. 난 그녀가 이따금씩 들려주는 얘기들이 참 구수하고 좋았는데 어느 날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자기는 '돈'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게, 보탬이 되게 쓰일 때만 '돈'이라고 생각한다고. 

 자기만의 돈의 정의을 갖춘 그녀를 보며 나는 앞서 언급한 미용업자와 신부님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나에겐 돈이런 무엇일지, 얼마나 필요할지 고민하며...

  지금으로서 내겐 신부님처럼 통장을 0으로 만들 만한 내공이 없고, 그래도 어느 정도 자기 생활이 보장되는 수준으로는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 정도, 남에게 폐 안 끼칠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용업자처럼 돈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일상이 주는 행복을 느끼지 못할 정도까지는 돈을 가지고 싶지 않고 추구하고 싶지도 않다. 

  그 최소치와 최대치 사이에서 나와 남에게 의미 있게 쓰이는 정도만 있으면 될 것 같다. 

  돈는 돌아다니라고 '돈'이라고 하지 않았나? 적어도 무작정 쌓아 놓고 싶지는 않다. 죽을 때 가져 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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