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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Oct 30. 2022

'후회'에 관한 사색 - 내가 가장 후회되는 일

  누군가가 인생에서 후회되는 일을 한 가지 꼽아보라고 말한다면 나는 바깥을 헤매느라 정작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소홀했던 일들 중 하나를 떠올릴 것이다.

  계절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지금, 굳이 고르자면 저녁이 길어져가던 어느 가을날처럼 말이다.

 바닥의 온기가 채 데워지지 않은 낡은 방 안에 그는 지쳐버린 노새처럼 누워 있었다. 그리고 나는 아마 그의 요청에 의해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던 것 같다.

  꽤 오랜 시간 고요가 감돌았고 덤덤함 아래 감춰둔 짜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 때쯤, 그가 나즈막이 요즘 팔이 왜 이리 아플꼬 하며 주위에서 한약 30만원이면 낫는다 카더라 하였다.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것은, 무언가를 선물하고자 마음 먹은 사람에게 가장 좋은 품목과 시기란 상대방이 꼭 필요로 하는 물건과 때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이 무언가에 대해 직접적으로 요청한 경우라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배 고프지 않은 사람에게 자기 맘대로 빵을 줘버리고는 흐뭇해져 돌아서 버리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지금보다도 더 어리석고 서툴러서 그런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평생 보약 하나 사달라 한 적 없고 설령 있다 해도 잘 먹지 않는 사람이, 그런 예외적인 언사를 보였을 때에는 좀 더 영민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그 심각성에 대해 심사숙고 해 봤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을 나는, 이제 막 입사한 사회초년생 자식에게 부려보는 응석쯤으로 가볍게 치부해 버렸다. 

  시간이 조금 흐르면서 그 증상을 오십견이라 부르고 잠을 이룰 수 없을 만큼 아프기도 하다는 것과 50세 전후의 어르신들에게 그것이 열병처럼 앉았다 간다는 것을 알았다.  이름인 오십견에 번득이는 숫자처럼, 이제 당신의 삶은 반 백의 등성이를 넘어섰기에 앞으로는 기울어질 일만 남았다는 일종의 예고장 같은 아쌀함을 당사자에게 준다는 것도 말이다.

 내 마음을 조금 더 아프게 하는 건, 내가 처음으로 이를 뽑았을 때, 성장통을 겪고 여자로 성장할 때, 입학을 하고 졸업을 하는 등 수많은 처음과 처음을 거쳐올 때 아버지는 항상 흐뭇한 표정으로 그 순간을 함께 해주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힘겹게 혹은 당혹스럽게 맞닥뜨렸을 처음의 순간을 너무도 얄팍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넘겨버렸다.

  가슴이 시려서 그가 그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묻지 못하겠다.

  시간은 흐르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후회라는 찌꺼기가 남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좀 더 용기를 내고 싶다. 좀 더 무대포가 되어 그의 처음을 함께하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그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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