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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카페 Jul 06. 2023

우리의 삶은 어디로 향하는가

《월든》이 가리키는 삶의 방향


불멸의 고전,《월든》


최근에 책 한 권을 읽었다. 불멸의 명작이라 칭송받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월든》이다. 국어 선생님이신 이모에게 몇 년 전에 선물 받았지만, 바쁜 대학 생활을 핑계로 읽는 것을 미뤘다. 휴가 때 책장에서 발견한 먼지 쌓인 이 책을 부대 개인 정비 시간에 틈틈이 읽었다. 그리고 소로우의 다채로운 자연 묘사와 문명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을 읽고 나니 내 삶을 깊게 반추하게 됐다. 개인의 성찰을 떠나, 이 서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그 인기에 힘입어 산업혁명 시대 속에서 자연주의의 가치를 보존했다.





소로우와의 만남


이 책과 만나기 전까지 나의 삶은 혼란스러웠다. 매일 반복되는 군대 생활에 지쳐 있었고 1년 만에 많은 것이 바뀐 사회는 초조함과 막막함의 대상이었다. 전역 후에 사회인이 되기 위해 대학 복학과 취업 정보를 찾아봤지만, 왠지 모를 사회와의 괴리감이 느껴졌다. 아무도 모르는 파티에 가서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 상황이랄까, 무르익어가는 파티의 분위기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어떤 이가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연설하고 다른 쪽에서는 요즘 각광받는 산업 분야를 논하고 있었다. 나는 이 파티가 왜 열렸는지 설명해 주고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 줄 누군가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파티장을 정신없이 거닐다가 난간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는 소로우를 찾았다. 그는 무대에서 관심을 끌고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위 이외에도 이 시간을 즐길 방법이 있다면서 나를 파티장 바깥으로 데려갔다. 그를 따라 건물 뒤편에 있는 오솔길을 걸어가니 달빛에 비쳐 유리같이 반짝이는 월든 호숫가에 도착했다. 호수의 잔잔한 물결 소리와 규칙적으로 들리는 쏙독새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던 파티의 잡음을 지워주었다. 그 광경은 혼란스러운 나의 마음이 별 일 아니라고 말하듯이 무척이나 고요하고 차분했다.





소박한 삼림 생활


나는 그가 직접 지은 통나무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 있는 가구라고는 침대 하나, 탁자 하나, 책상 하나에 의자 세 개가 전부였다. 그는 하나뿐인 냄비에 호밀과 옥수수를 요리해서 나에게 대접했다. 내가 파티에서 보았던 고급 가구와 신선한 고기가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집 안에 모든 것은 자신이 일꾼 것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준다고 답했다. 자신의 노력이 들어간 밋밋한 가구는 보석이 박힌 호화로운 가구보다 가치 있고, 고생 끝에 수확한 옥수수는 육즙 가득한 고기보다 달콤하다는 말이다.


식사를 끝내자 소로우는 숲 속에서의 삶을 말해줬다. 그는 문명사회가 제공하는 편의를 뒤로 하고 이곳 월든 호숫가에서 소박한 삼림 생활을 지낸다. 아침이 밝으면 살아 숨 쉬는 자연을 발판 삼아 콩밭에서 김을 매고 낚시를 즐긴다. 때로는 집 근처의 삼나무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들꿩의 울음소리를 노래 삼아 해가 잘 드는 문지방에 앉아 호메로스의《일리아드》를 읽는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그를 시원하게 해 주고 호수 위를 헤엄치는 되강오리들이 그의 벗이 되어주니 결코 무언가를 과하게 갈망하지 않고 자연이 제공하는 선의에 감사한다.


나는 그의 이야기에 매료됐지만 한편으로는 고독하고 불편한 삶을 자처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성공한 삶은 많은 부를 축적하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쟁취해서 타인에게 존경받는 인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명사회를 떠난 삼림 생활은 내가 추구하는 성공의 지표와 사뭇 거리가 있었다. 자연과 함께 느긋하게 사는 삶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루는 24시간으로 쪼개져 시침 위를 달리는 시간에서 태양과 달의 경계선 위를 자유롭게 산책하는 시간이 된다. 월세를 내고 살 곳을 찾거나 가파르게 상승하는 소비자 물가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문명사회를 등지고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건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였다. 오히려 그는 내가 목표하는 성공의 신전에 돌을 던지는 시위자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조언을 구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사회에서 성공하고 싶은데 무엇을 하면 좋을지 말이다. 그에게 끌린 이유는 그가 자신의 삶에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삼림 생활을 하면서도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행복을 누렸다. 행복, 우리는 이 비밀의 신전을 찾기 위해 날마다 고군분투하고 있지 않은가. 그는 부를 축적하는 행위를 이렇게 묘사했다.


젊은이들이 당장에 인생에 실험해 보는 것보다 사는 법을 더 잘 배울 방법이 또 있겠는가? 인생의 황금 시절을 돈 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과 삶의 가치가 가장 떨어지는 시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뿐이다


나는 전역 이후에 돈을 모으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었다. 어떤 직장이 얼마만큼의 연봉을 주는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고 어디든 여행할 수 있기에 행복이란 돈을 지불하고 구매할 수 있는 물질적 개념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소로우는 가진 것 이상을 누리려 하지 않는 소박함을 행복의 양분으로 삼았다. 그는 "우리가 소박하고 현명하게 생활한다면 이 세상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행복을 돈으로 구매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보편성을 띄게 된다. 사회에는 행복의 공식이 생겨나고 그 공식에 어긋난 사람들은 불행하고 실패한 삶으로 전락한다. 결국, 서로가 가진 행복의 크기를 비교하며 타인의 것을 시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 시기심이 내가 가진 행복의 크기보다 커질 때, 우리의 삶에는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왜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한 가지 삶을 과대평가하는 것인가. 소로우는 이 대화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너도밤나무 그릇으로 만족하던 시절에는 사람들은 전쟁으로 고통받지 않았다."




인간의 불멸성


남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삼림 생활을 개척하는 그의 모습은 신의 부름을 받고 떠나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처럼 보인다. 그의 노동은 조폐의 톱니바퀴에서 벗어나 자연이 선사한 은총을 가꾸는 숭고한 작업을 한다. 그가 가진 삶의 확신은 뚜렷한 목적성에서 나온다. 노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나아가 내 삶의 종착점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하는 자는 타인의 시선과 관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외부에 위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부를 쌓고 높은 사회적 위치를 갈망했던 이유는 그것이 나의 가치를 나타내는 증명서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 개인의 정체성은 내면의 투쟁을 거듭해서 도달한 언덕 위에 있다. 아틀라스처럼 세계를 내 어깨에 짊어질 용기를 가지고 인생을 시험대에 놓은 자만이 정신을 살 찌우고 삶의 방향성을 정립한다.


존 싱어 사전트의 『아틀라스와 헤스페리데스』


나는 소로우에게 물었다. "당신처럼 개척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자 그는 삶의 주체성을 논했다. 사람의 육신은 이른 시일 내로 땅에 묻혀 흙이 되니 인간의 신성과 불멸성은 우리 정신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생활을 신봉하고 살면서 변화를 거부한다. 의무 교육을 끝내고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에 취직한다. 유행을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집단의 일관성을 우상화한다. 그렇게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육체는 움츠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불안에 떠는 '평판의 노예'로 전락한다. 나아가 정신은 과도한 노동과 근심에 사로 잡혀 인생의 무한한 가능성을 외면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내리는 자체평가를 곁에 둘 필요가 있다. 타인의 조언이 스스로의 판단보다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인생의 절대적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며 오래된 사고방식은 언젠가 암초에 부딪혀 난파선이 된다. 인간의 불멸성은 스스로가 돛을 펴고 드넓은 바다로 항해를 떠날 때 비로소 빛을 발한다.




현시대의 항해사


나는 자신의 배를 이끌고 살아가는 항해사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감각적 형태로 구체화하는 예술인이자 창작인이다. 오래전부터 문학, 음악, 미술 같은 창작 활동은 마치 불멸성을 지닌 듯 세대가 변해도 사람들에게 소비되고 영감을 준다. 인터넷 시대의 도래에 발맞춰 등장한 콘텐츠 크리에이터(Contents Creator)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창작물도 시간의 장벽을 넘어 다음 세대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창작인 이외에도 믿음의 돛을 펴고 모험을 떠나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 있다. 다수가 동의하는 성공의 길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자유인들. 좋은 직장을 가지고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게 꼭 성공한 삶이라 단언할 수 없다. 자신의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사람은 유망한 기업의 중간 관리자보다 인생의 방향성을 잘 알지도 모른다. 이 세상이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로만 가득 찬다면 삶의 가치는 비교의 문턱에서 전진하지 못한다. 


그와 대화하다 보니 어느새 동이 트고 월든 호수의 생명은 다시금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내가 그와 집 밖을 나와 호숫가로 걸어가자 호수의 수면 위에 떠 있는 태양이 보였다. 태양은 한결같이 호숫가 주변 생명을 깨우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활력을 불어넣었다. 태양의 따사로움을 만끽하던 도중, 유명한 구절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Tomorrow is another day)" 

-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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