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규가 호주 영주권을 받은 것은 한국을 떠난 후 딱 4년 만이었다.서른 후반의 나이에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영주권자가 됨과 동시에, 그간 모아둔 돈과 약간의 대출로 작은 빵집을 열기로 결심했다. 이제 남의 밑에서 일하는 건 지긋지긋했던 그였다(특히 믿었던 한국인인 밑에서). 그의 매장 후보지에는 한국인 밀집지역은 넣지 않았다.그러다 보니 잘 모르는 한적한 동네만이 남았고, 그중 한 노부부의 빵집이 매물로 나온 것이 마음에 들었다. 단골도 꽤 있고, 오래간 자리를 잡은 곳 같아 보였다. ‘크진 않아도 여기가 제격이겠다’ 그는 생각했다. 너무 한국인이 없음에 외로움이 밀려올 것 같았지만, 그것이 그가 오랫동안 찾던 평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에게는 분명 그것이 필요했다.
예산이 한정적이었던 만큼 빵집은 그리 크지 않았다. 우드풍의 인테리어, 좁은 주방, 빵 몇 개만 놓아도 푸짐해 보이는 진열대, 한 개의 테이블이 빵집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자신만의 큰 무대처럼 보였다. 처음 공항에서 느꼈던 그 따뜻한 바람을 다시금 기억하며, 끼익거리는 빵집의 창문을 열었다. 동네 사람들과의 새로운 인연, 그가 만들어갈 빵 향기가 이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울 것을 상상하며, 그는 깊이 숨을 내쉬었다.
"이제 시작이야".
봉규는 새로운 빵집을 인수하고 나서도, 굳이 변화를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전 주인이 남긴 ‘Backery Bakary’라는 간판도, 메뉴도 그대로 유지했다. 우선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싶지 않았고, 굳이 튀고 싶지않았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빵집을 변함없이 유지하면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찾아올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실제 첫 몇 주간에는 그의 예상대로 손님이 적지는 않았다.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으며, 본인을 새 주인이라 소개했고, 장사의 재미를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손님이 하나둘 줄어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멜버른의 날씨는 변덕스러워 사람들이 덜 나올 수도 있고, 다른 행사나 축제가 열려서 손님들이 빠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건 그만의 착각이었다. 빵집은 매일 점점 조용해졌고, 봉규 홀로 카운터를 지키는 시간이 길어졌다. 봉규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빵맛을 제대로 못 내는 걸까?". 그날도 그는 주방에서 반죽을 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는 호주의 빵맛을 잘 알지 못했다. 제빵을 배울 때도, 서양인 친구가 만든 빵은 입에 맞지 않아 자주 먹지 않았고, 그 때문에 현지 사람들의 입맛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레시피 그대로 했는걸…’. 걱정이 커져갔다.
심지어 그는 옆 동네의 유명한 빵집을 방문해 그곳의 메뉴를 관찰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줄을 서서 빵을 사갔다. 봉규는 그곳에서 몇 가지 인기 있는 빵을 골랐다.그쪽 주인이 알아볼리는 없었지만, 괜히 모자를 푹 눌러쓰고 계산했다. 그리고 그 빵들을 자신의 가게에 조심스럽게 메뉴로 추가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