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 빵집을 열긴 했는데요...(4)
그날도 봉규는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가는 내내 고민을 했다.
그는 그저 걸었다.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아 두었지만, 노래도 켜지않았다. 안 켠 것이 아니라, 그저 켤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봉규는 낯선 풀내음에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어디지?’
봉규는 최면에서 깬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알던 건물이 보이긴 하는데?’
생각해보니 영주권을 따고 빵집을 연 이후로 이곳저곳 돌아다닌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는 언제나 가게와 집, 두 곳 사이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여기는 그냥 집과 가게 반대편의 공원이었음을 알고, 그는 헛웃음이 나왔다. 자유를 찾아 지구 반대편으로 온 본인이, 결국 쳇바퀴안에서 살고 있었다니 생각했다
처음으로 그는공원을 걷기로 했다. 공원이 크지않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푸른 빛에 황홀해했고, 가끔 쉬러 와야겠다고 다짐하며, 잠시 벤치에 앉기로 했다.
그가 닿은 벤치에는 마르고 작은 백인 소년이 혼자 앉아 있었다. 보통은 벤치에 사람이 있다면 다른 곳으로 갔겠지만, 이미 많이 걸은 자신의 다리에 통증을 느끼며 소년 옆에 앉아보기로 했다.
보려고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소년은 조용히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순간 호기심이 든 마음에 아이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영어가 완전 편하진 않지만, 어린아이와의 대화라면 괜찮겠지 싶었다.
"안녕?"
봉규는 부드럽게 인사었다.
소년은 잠시 고개를 들어 봉규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봉규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 소년은 무심히 “저는 혼자 잘 다녀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손에 들고 있던 스케치북을 살짝 들어 올려 봉규에게 보여주었다.
봉규는 호기심이 들어 스케치북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공원의 나무와 벤치, 그리고 한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은 서투른 솜씨로 그려졌지만, 봉규는 자신임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설마’라고 생각하는 찰나에 소년은 그 사람을 짚으며 “아저씨에요!”라고 했다.
그림속의 사람은 본인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분명한 아이보리색 얼굴에, 짧은 검은 머리. 다만 아쉬운 것은 그림 속에서 그는 지금 입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검은 티셔츠와 타이트한 청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그림 속의 그는 후드티와 반바지를 입고 걷고 있었다. 봉규는 기쁘면서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닌 것 같은데? 옷이 다르잖아.”
그러자 소년은 봉규의 눈을 응시하며 가르치듯 말했다.
“이제 입으면 돼죠”
그는 당황했다.
“아 그렇긴 하지” 하면서도 본인이 저런 옷을 입을리 없다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