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도가 성행하는 진짜 이유
바람 잡이에는 앞담화가 특효약
결혼 후 남편은 나에게 '너 깬다'는 말을 종종했다.
단연 '미모'일거란 나의 착각과는 다소 거리가 먼, 내 남편이나와 결혼한 진짜 이유들이 있다.
가장 첫번째가 바로 나의 '적다 못해 거의 없는 말 수'였다.본의 아니게 나도 참 연애때 내숭을 떨었었나보다. 남편 딴에는 내가 연애할 때 말을 별로 하지 않아 다소곳하고 얌전하여 필히 조용한 결혼생활을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말이 없어 그것이 자신의 우수에 찬 호수에 돌팔매질이 되지 않기에, 자신의 다소 더럽고 이기적인 심연을, 정리되지 않아 복잡한, 그러나 너무 엉켜있어 손쓸수도 없는 내적 세계를 유지시키는데 별 무리없는 적격 여성 나라 여겨, 자신의 사회적 가면을 공존시키것에 무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사람이라 나름대로 인식한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자기 편한 대로 결혼 전 내 모습을 재해석했던 남편은 당연히 여느 남자가 맘에 드는 여성을 볼 때와 거의 마찬가지로, 나를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여성상에 맞춘 기준에 따라 자기 맘대로 짜집기해서 볼 자유가 있었다.
어머니상으로서 누구나 동경하는 마다하지 않는 신사임당, 가려운데를 살포시 긁어주는 애첩감 황진이 그리고 보다 경험적 인물인, 부족한 아이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가슴팍으로 안아 사랑으로 돌봐주셨던 자신의 초등학교 음악선생님 모습까지 전부다 자기맘대로 내게 끼워맞춰 그렸다고 한다.
연애기간동안 상대에게 나 자신을 솔직하게 노출하지 않았던 것도 내 죄라면 죄다. 우리는 결혼 전 단 한번도 싸운 적이 없었고, 남편은 그것을 '내가 순종적인 여자' 라는 시그널로 해석했었다고 한다.
진실의 나는 남편의 상상력과는 당연히 큰 차이가 있다.
특히 과묵하게 아들 옆에서 떡을 써는 신사임당과 달리, 나는 서로가 의견차이가 있을 때만큼은 머리가 상당히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다. 그에 맞춰 입도 1분에 600타정도 될 것이다.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머리가 아주 맑아지며 아주 차가워진다. 거친말을 쓰거나 인신공격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남편말에 따르면 나의 말은 욕보다 거친 욕이며 100배 이상 상대를 아프게 한단다. 철저하게 팩트로 무장하여 섬세하고 깊게 다각도로 공격해대는데 순한 남편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내 남편을 들여다보자.
남편은 1. 밥을 먹고, 2. 소파에서 티비를 보며, 3. 티비 프로그램이 끝나면 양치를 하고, 그 후엔 당연히 4. 컴퓨터 의자에 앉아 인터넷을 한다. 주말에는 이 4타입의 활동을 3세트 반복하고, 주중에는 1세트 후에 샤워하고 잠을 잔다. 1세트 안에는 '앞담화' 즉 대화가 없다. 본인 딴에는 하루에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냈던 날도 많았다고 한다.그런 사람이 나를 만났다.
처음에는 남편의 이러한 생활 패턴이 '너 깬다' 라는 말과 만나, 말 많은 나를 피해다니는 처사라 생각했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이 들어갈 틈이 없는 사람이라는 현실에 대해 남몰래 눈물 짓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내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원래 한국 아빠들은 내 친정 아빠빼고 집에서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오랜 정의를 각지에서 접하게 되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일원주의의 연장선으로서 본인 의견을 먼저 스스로 함묵하고 구성원과의 자리에 임하는, 가정은 사회의 연장선이었던 셈이다! 즉, 뒷담화하는 꾸리한 관계가 아니라 앞담화 하는 부부관계로서 누굴만나도 내 남편의 행동패턴이 비슷했을 것이라 단정하는 바이다.
한국사회에 외도가 만연한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성적 욕망은 둘째치고, 모두가 대세에 순응하느라, 정작 자신의 내면의 생각, 감정, 느낌 등을 스스로를 따돌려 혼자가 되어 외로워진 내면의 소리가 나좀 알아봐달라고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사람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볼 때 참 반갑다. 너란 사람이 이제 살아나는 구나. 깨어날 준비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입이 막혀 뒷구멍으로 화를 빼며 속앓이하다가 이제 막힌 수도꼭지가 콸콸콸 소리내며 뚫리는구나 싶다.
이 사람이 자기 표현을 시작하는데 까지, 나는 공간에 청자가 있건말건 나의 앞담화로 가득가득 메웠었다. 사람을 자극해 마음에 원래 있는 자기를 깨우기 위한 무의식적 작업이었는지도 모른다. 흙투성이 내면을 가리려 항상 누굴만나든 과장되게 표현하는 어색한 자의식에 대한 반항심이었다.
앞담화로 공간을 '메워'지고 있다고 하니, 적어도 안개나 미세먼지 황사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계실줄로 안다. 하지만, 공간이 메워지고 있다고 해서 꼭 몸에 나쁜 공해물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폭포수 앞담화는 실로 남편을 극대노하게 하기도 했고, 당혹스럽게 하기도 쪽팔리게 하기도했지만, 결과적으로 남편의 내면을 깨웠다.
첫째로, 나와 마찬가지로 결혼 전 부모와의 관계 상처가 있다고 해서,그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화상담과 나의 분석을 바탕으로 한 일장연설을 통해 남편 마음속에 어머니에 대한 분노, 아버지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장장 15년의 기간에 걸쳐 드디어 맘속에서 처리되게 되었으며, 둘째, 미국에 살때 홀로 돌아가진 외할머니에 대한 애도또한 나의 앞담화가 끌어내어 남편의 마음이 말끔해졌다. 항상 심각하고 시니컬한 남편의 얼굴에는 이제야 생기가 돌고, 남편의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여유로운 농담이 실실 흘러나온다.
매일 남의 뒷담화나 일삼던, 매우 사회적이었던 인간의 입에서 숨어있던 자신의 생각이 나온다.군부독재에 제대로 감화받은 가정안의 장남으로서 47살 평생을 살면서 얼마나 자기감정과 생각을 처리하지 못하고, 느낌을 처리하지 못하고 살았는지, 산타할아버지의 봇짐 이상으로 부풀어 남산만했던 남편의 묵직..한 가슴이 이제는 누가 봐도 적당한 B컵 가슴만 해 졌다.이 모든 긍정적인 효과들이 꼭 둘이 커피잔을 가운데 두고 오손도손 눈을 보며 이야기하는 고요한 분위기에서 달성된 것이 아니다. 모든 성과의 8할은 박진감 넘치고, 추진력 강한 신랄한 말싸움에서 일궈냈다.
내가 말의 속도도 빠르고 나름대로 정확하게 표현을 한다는 것이 남편 입장에서는 감정처리를 하며 의견을 표현하는 것에 그것도 그 둘을 동시에 해 내야 가능한 말싸움에 대응하기는 커녕 내 말을 듣고 따라오기 바쁘다. 처음엔 그랬다. 지금은 그냥 남편이 보살이 되어 나름의 목탁만을 두들기고 있다. 나를 통해 남편은 회색돌기법인듯 나름대로의 침묵을 유지하며 고요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던 나의 앞담화를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혼자 말도 안되는 소리를 다다다다 지껄인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내게 점차 세뇌되어 가는건지 뭔지, 이제는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에도 일리가 있다며 그동안 사회생활에 얼어, 마음 한구석에 편협하게 꽂혀서 구겨진 채, 점차 나아갈 방향을 모르던 자신만의 시각과 세상을 보는 태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그 많은 문제가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렸다며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부어준 내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 눈치다. 남편의 한층 가벼워진 마음을 내 눈으로 확인한다.
에너지를 가진 내 말이 힘이 되어 상대 맘속에 들어가, 무슨 파장을 일으켰는지 내가 신녀도 아닌데 알 길이 없지만, 입에 문 칼날이 쓸모가 있을때도 있다고 하니 열린 마음으로 나의 매서운, 그러나 진심어린 마음의 말을 받아들여주는 남편에게 나 또한 넘나 고맙다.
나는 뤱퍼가 되어 뤱을 하고 남편은 바윗돌 같은 마음에 보살의 온기가 더해져 마음의 평온함을 유지하니, 우리의 조화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더냐.
이 모든 것은 다, 룸쌀롱 없고 밤문화 없는 캐나다와 앞담화 여왕 캔디의 조화가 이뤄낸 협작이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