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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Nov 15. 2024

여자는 미혼모가 되기 전, 영혼의 짝꿍을 만난다.

쑥맥이라 ...했다.

미팅에서 자신이 좋다던 남자 둘 중, 더 신실해 보이는 남자를 선택한 캔디.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캔디가 선택하지 않은 남자는, 집안에서 정해준 결혼 할 여자가 있었고, 본인이 이용할 가치가 있는, 자칭 자신의 자취방 밥순이이자 청소부 간호사 애인도 있는 상태에서 소위 쪽수를 맞추기 위해 미팅에 나온 상태였다고 하니, 보자마자 불쾌한 기분이 들어 그의 소리를 비롯한 그 사람 자체를 걸러낸 캔디의 눈과 귀는 스물 한살 때도 매서운 직감이 통하는 상태였다.


그에 비해 신실남은 솔직히 캔디에게 첫눈에 홀딱 반했었다. 한 명의 대상을 보자마자 그의 온 몸에 전율이 감싸, 눈과 귀와 코와 입에 다른 어떤 감각을 느낄 수 없고, 다른 생각도 할 수 없이 마비된 상태인 것이 철저하게 느껴졌다. 캔디 또한 28살 신실남이 또래남자애기들 같지 않아 좋았다. 아저씨라면 아무나 좋아하는 21살 어린 여자라는 뜻이 아니라, 신실특유의 냄새가 좋았고, 착하고 검소한 옷차림이 좋았고, 묻지도 않았는데 신의 이전 소개팅과 여친들과의 짧은 만남에 대해 맘대로 짓거릴만큼 꾸밀줄 모르는 구린 사람이라 좋았다. 돈이 있는 척 과시하는 허세남이 아니라 마음이 편해서 좋았고, 얼굴 양쪽이 옆으로 넓어서 어딘지 모르게 귀여운 느낌이 있는 것이 좋았다. 터무니 없이 순수한데, 이 인간도 나와 비슷한 쑥맥임에 틀림없는데, 그래도 나이가 나보다 예닐곱살 많으니 어딘지 정의내릴 수 없는 몸 속이나 마음 속, 또는 머릿속일까 암튼 정의내리기 모호한 것이나마 나보다 성숙한 부분이 있을거라 기대감을 들게 하는 그 느낌이 좋았다. 그 와의 대화속에서 우리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우리에게 가장 귀한 진심을 우리 각자가 태어나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사람에 의해 유린당한 것 말이다. 슬프지만 인정해야하는 우리의 아픈 진실. 나를 누구보다 아껴줄 사람을 서로 필요로 했던 우리다. 하늘이 점지해 준 영혼의 짝꿍 같았으며,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 모난돌이 정맞는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실감났다.


첫 성관계 시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어디에 어떻게 넣어야하는지 둘 다 몰랐기 때문이다. 신실남은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봤다며 떠들었지만 정작 경험이 없는 입문자였기 때문이다. 두번째 시도 또한 비슷했다. 세번째 쯤 되니 질내사정에 성공할 수 있었고, 그것은 15일안에 내 가슴에 사춘기 초입과 비슷한 통증과 유두착색 그리고 처음 경험해본 변비라는 고통과 뭐든 10초만에 소화하는, 또 돌아서기만해도 배고픈 식욕팽창을 만들어냈다.


열흘이나 늦어지는 생리에 설마 임신이나 했을까 무서웠지만 '처녀가 임신할 리 없다'는 의구심반 현실부정 반의 마음 때문에, 전화 통화에서 오빠에게 슬그머니 의심을 흘렸고, 오빠는 내 손을 잡고 오빠 학교 근처, 미아리에 있는 산과에 려갔다. 생각해보니 내가 여섯살 무렵, 엄마 손을 붙잡고 엄마의 보호자 자격으로 갔던 비출산 산부인과 맞은편에 있는 곳이었다. 소변검사와 질내초음파를 보고 우리는 벌써 5주나 된 곰돌이 젤리가 내 안에 자라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때도 계절 상,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때와 같은, 바로 11월이었다. 2010년 11월. 늦가을.


나는 당황했고 암담했다. 대학을 졸업한지 1년 반밖에 되지 않았으며, 취직하고 교사로 일한지 1년밖에 안되어 모아둔 돈이라곤 주식과 펀드 합쳐 수백만원 뿐이었다. 언니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결혼하려면 수백이 아니라 수천만원이 들어간다던데... 그것도 욕심많은 예비시어른들을 만난다면 아파트 한 채나 밍크코트, 또는 예단 예물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던데...  이제 막 내 힘으로 월급을 만들어 은행에서 지점장으로 일하시는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주식 펀드에 투자하고 수익률 17프로 20프로 많게는 28프로 보며, 돈버는 재미, 커리어 쌓는 재미를 알았는데, 순간 모든 것에서 내 스스로가 현실에서 이탈됨을 느낀건,  아이러니하게도 오빠 입에서 나온 '결혼'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꼭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건 아니잖아
나 혼자서도 아이는 키울 수 있는 거 잖아
세상 사람들의 기준대로 아이에게 꼭 엄마, 아빠가 속한 전형적인 가정을 줘야하는건 아니잖아



하늘에서 나에게 부모라 점지해 준 사람들의 생활을 20여년 넘게 보며,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 아니 남녀가 함께 사는 것에 대해 온몸으로 극구부정하고 있었던 나는, 임신 5주 사실을 확인 한 후에도 그것이 결혼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세상에...이건 너무 이르잖아. 그럴 수 없어. 결혼이라는 걸 한다면 당연히 저 사람과 할텐데, 그건 분명한데 이건 너무 이르다... 나는 아직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엄마가 될 준비가 너무 안되어있어...정말 말도 안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하는 것이며, 고기도 먹던 놈이 먹는거라고 순진한 쑥맥이라 이성과 손도 못잡아본것들이 그걸 하면 바로 임신이 되는거다. 오히려 계속 하던 연애고수들은 결혼 전 실수가 없다. 사람들은 고딩엄빠라 미혼모라 발라당까졌다지만 그건 현실을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사실은 성관계가 뭔지 몰라 조심할 생각도 못하는 사람들이 혼전임신을 한다. 혼전임신을 하기 위해서는 아주 정기적이고 규칙적이었던 생리주기가 임신 전 2-3달안에 혼잡하게 바뀌기도 한다. 생리를 시작한지 10여년동안 일정했던 생리주기와 배란일. 배란일 전 2-3일 그리고 배란일 후 1일 안이 매 달의 임신가능일인데, 하늘의 장냥으로 그 전전달부터 생리주기가 흔들리니 세상에 현존하는 배수의 진 즉, 몇겹의 임신방지책이 소용 없어진다. 젊은 20대 초중반의 성관계는 곧장 임신으로 이어진다. 거의 예외가 없다.


엄마가 여닷새전에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캔디, 어제 꿈이 이상하더라
맑고 깊은 물이 보였어...
 투명하고 깊은 호숫가에서 수 많은 잉어들이 넘실대고 있었어
엄마가 커다란 놈을 하나 잡았는데 은빛깔이 싱싱하더라
얼마나 파닥파닥 몸통을 흔들어대던지...

분명한 태몽이다 몸조심해라


태어나면서부터 스물 다섯살이 된 그때까지, 살면서  한번도 어떤 방향에서도 그들을 실망시키거나 슬프게 한 적이 없었던 큰 딸 캔디는 산부인과 검진 후 집에 돌아가는 길 택시안에서 어깨와 고개가 세상없이 무거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에 발을 딛었다. 가족이 사는 공간이 이전에 매일 느끼던 집 내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엄마... 엄마를 불렀다. 주방에서 김치겉절이를 무치고 있던 엄마는 내 무거운 낯빛을 보더니 순간 정지된지 5초만에 말했다.


...임신했구나


상습적으로 어릴때부터 나와 소통하기를 거부하고, 습관적으로 밥만 차려주던 엄마였지만, 항상 그녀와 나는 영적인 부분에 공통점이 있었다. 나의 미래는 그녀의 꿈에 언제나 여과없이 선명하게 드러나있다. 나에겐 미래라지만 그녀에게는 과거꿈이야기인 내 인생이다. 이번에는 좀 빗나가려나 했지만 역시나 어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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