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풍 May 30. 2020

인간의 사회성

인문학

한자로 인간은 ’사람 사이에서‘라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인간을 사회적 동물 또는 정치적 동물로 규정하였고, 로빈슨쿠르소처럼 인간이 혼자 살면 비정상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만큼 인간에게 사회성은 중요한 요소이다. 개미나 벌들, 그리고 많은 동물들도 집단생활을 하고, 서로 협동을 하면서 일정 수준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 지금처럼 전 세계가 소셜네트워크(SNS)로 연결되고, 자동차와 항공기 등 교통수단을 통해 빠르게 연결된 것은 인류 역사에서 5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이지만, 2019년 우리나라 사람 중 연인원 2,800만 명이 해외여행을 했다. 사람들 간의 협동이 수렵·농경 사회의 생존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수십만 년 동안 인류는 가족, 마을, 부족 단위의 공동체 사회를 이루고 살아왔다. 이제는 77억 명의 인구 전체가 인터넷 연결을 통해 하나의 가상공동체(virtual community)를 형성하고 있다. 동시에 소규모 친구 그룹을 제외하고, 전통적인 사회적 협동심을 느낄 수 있는 기초공동체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인간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마저도 1인 가구로 변하고, 따라서 친족 구성원 간의 우애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며, 학교도 스승과 제자 간 존중문화가 사라지고, 직장은 서로 경쟁 관계가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대면적인 소규모 인간집단 내에서 공동생존과 상호이익을 위해 협동을 바탕으로 태동했던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개인주의와 가상공동체를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현 인류의 사회성을 규정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도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고독한 군중>에서 인류의 역사적 사회 성격을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그리고 외부지향형으로 구분하였다. 전통지향형은 전통사회에서 전통을 따르는 인간형이며, 내부지향형은 19세기 초반까지 시대에 가족에게서 학습된 가치관을 따르는 인간형이다. 그리고 외부지향형은 현대인으로 동료나 친구들의 행동과 반응을 기초로 하는 인간형이다. 외부지향형 현대인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지 않도록 애쓰지만, 내면적인 고립감 속에서 사는 특징을 보인다. 이런 외부지향형 현대인이 고독한 군중 또는 군중 속의 고독으로 지칭된다. 이처럼 인간은 더는 전통적인 협동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사람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역설적인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개인이 자유의 짐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는 존재"라고 파악했으며, 또한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소로 종교를 선택하거나, 독재자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정신적 안정을 찾거나, 자본주의의 기계에서 톱니바퀴가 되어버린 개인은 여론이라는 익명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고독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라고 설명했다.


유대인 신비주의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인 1923년 출간한 <나와 너>에서 인간소외, 비인간화, 자기 상실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깨져서 생기며, '나와 너'의 관계를 말하는 기쁨을 잊어버린 데 있다. 전체 인격을 기울여서 통일체로서 공존하는 '나와 너'의 관계 회복을 통해서 깨진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나의 온 존재를 기울여서 상대를 인격과 존엄으로 대하고 동시에 나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관계인 '나와 너'의 관계와 상대를 조종과 조작의 대상으로 여기고 나도 스스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는 '나와 그것'의 관계를 구분했다. 사람들을 조종하는 대상으로 여기면, 결국 자기도 자기모순과 소외를 느낀다는 관점이다. “사랑이나 정신이란 내 속에 있지 않고 나와 너의 사이에 있고, 하나의 우주적인 작용이다”라는 부버의 인식은 글을 읽는 사람 속에서 영혼의 기타가 스스로 연주되는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또한 ”동물의 눈은 하나의 위대한 언어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음성이나 동작 없이도 눈초리만으로 어떠한 말 못지않게 강력하게 본성 속의 신비를 표현한다"라는 관찰도 세상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신에게도 절대적 인격적 속성을 줘야만 신과의 '나와 너'의 관계가 가능할 것이라는 논리로 신의 인격성을 논증하는 점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할 때는 분리된 개별 인격체들의 인간들이 사회 속에서 만나서 협조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그러나 부버의 관점은 이런 협조의 관계를 넘어서 한 인간의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의 존재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람들 간의 인격적인 통합인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식은 분리된 육체만을 의식하면 불가능하다. 비록 몸은 분리되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영혼적인 측면에서 개별 인간들의 영혼이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야만 가능한 인식이다. 미국의 영성가였던 웨인 다이어도 “나는 육체 속에 사는 영혼이 아니고, 영혼이 껍질인 육체를 가지고 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인간이 수십만 년간 익숙했던 전통적 가치에서 멀어지고, 이제는 상호 협동적인 사회적 동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비대면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과 SNS의 발달은 인간의 상호관계를 더욱 간접적 관계로 만들고, 군중 속의 고독감과 함께 제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원시시대나 소규모 농경시대의 인간들과 비교해보면, 현대인들은 훨씬 많은 지적인 정보를 습득하고 있고, 자존심과 자신의 지위나 명예 등에 대한 자각도 훨씬 크다. 더는 전통적인 위계질서나 일방적인 질서체계를 수용하지 않는다. 현대인의 특성에 어울리는 새로운 소규모 친목공동체가 필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공통 관심과 이익을 기초로 하는 소규모 공동체에 전통 사회적인 상호협동, 돌봄, 배려, 존중의 가치가 첨가되면 좋을 것이다. 공동이익, 취미, 관심을 기반으로 한 기존의 동호인 모임이나 카페, 그리고 같은 아파트 사람들 등 소그룹 모임에 전통적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면, 현대판 새로운 공동체로 탄생할 수 있다. 즉 시대적 필요성에 따라, 공동 이익집단의 가족화를 의미한다. ‘먼 이웃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라는 속담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는 방법이다. 이런 새로운 소규모 공동체가 전통적인 공동체나 가족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본다.    


아직도 인간의 사회성과 협동심을 보여주는 증거는 사회 유지를 위한 미담들이다. 세상에는 타인을 돕는 사람들이 많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주윤발은 전 재산 8,100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고 자신은 월 20만 원 정도로 생활한다고 한다. 성룡도 자신의 재산 1.7조 원의 절반을 기부했고, 죽기 전에 나머지도 기부할 예정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김영석(91세) 씨 부부는 2018년 10월 평생 시장에서 과일 장사로 모은 전 재산 400억 원을 고려대학교에 기부하였다. 또한, 미국인 부호 로버트 스미스는 2019년 5월 애틀랜타 조지아주 대학 졸업식에서 전체 졸업생들의 학자금 융자액을 대신 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영화배우 신영균 씨(91세)는 2019년 11월 500억을 기부하였다. 부자가 타인을 돕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말 가난한 사람이 구두닦이나 평생 시장에서 일하면서 번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뉴스를 가끔 접하게 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가슴이 찡해진다.





이전 25화 기분과 심리적 평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