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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Aug 24. 2023

느낌과 감정의 구분

감정과 에고의 정체

느낌(기분: feeling, perception)과 감정(emotion)은 밀접하게 관련되지만, 서로 구별되는 개념이다. 감정은 특정 자극에 대한 복잡한 자동 반응으로, 종종 심장 박동수 증가 또는 표정 변화와 같은 생리적 변화와 함께 발생한다. 이처럼 감정은 자극에 대한 즉각적이며 본능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감정이 세상에 대한 원초적인 반응이라면, 느낌은 세상을 많이 살아본 성숙한 감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느낌은 감정의 해석과 처리 결과로 생기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느낌은 개인적인 경험, 문화적 맥락 및 개별적인 사고 과정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느낌은 감정의 의식적인 경험으로서, 감정과는 강도와 지속 시간이 다르다. 즉 감정은 초기 생리적 및 심리적 반응이지만, 감정에서 비롯된 의식적인 경험인 느낌은 경험, 생각, 문화 등 다른 요인들도 반영한다. 

특히 중요한 점은 감정이 인류의 집단적 현상임에 비해, 느낌은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특화된 현상이다. 집단 감정을 벗어나고 개인적 느낌을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감정이 화를 내고 싶어도, 느낌이 지금 상황에서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알려준다. 사실 에고라는 것도 개인적인 특질이라기보다 감정과 같이 인류 집단의 공통된 경험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래야 해'라는 에고의 기준은 부족이나 종족이 오랜 세월 겪은 경험의 결정체들이다. 에고의 기준이 충족되면 즐거워하고, 기준에서 멀어지면 감정이 발동한다. 에고와 감정은 함께 작동하는 인간 집단의 공통적인 존재 방식이다. 구석기 동굴시대에 만들어진 에고와 감정체계가 21세기에도 작동중이다. 그래서 문제가 많다. 이에 비해 느낌은 개인적인 특질이며, 오감뿐만 아니라 육감이나 영혼, 우주의 에너지까지 느낄 수 있다.

사실 모든 만물은 에너지가 물질화된 모습이다. 나무나 꽃을 볼 때, 외형적 자태뿐만 아니라 물질을 품고 있는 에너지를 인식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느낌이다. 현대인들은 원래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부여된 많은 느낌의 능력을 상실하였다. 온종일 매우 제한적인 에고와 감정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즉 현대인이 힘든 이유는 개인적인 느낌을 창의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과거 부족사회의 유물인 에고와 감정에 얽매여 살기 때문이다. 매사에 '이것은 이래야 해, 저것은 저래야 해'라는 에고의 기준을 내려놓고, 현실 그대로를 수용하는 자세가 에고와 감정을 탈피하는 삶의 방법이다. 세상에는 원래 좋고 나쁜 것이 없다. 그냥 그런 것이다. 그런데 에고가 높고 낮음과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이어서 감정이 보조를 맞춘다.

따라서 먼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느끼고 인정한 다음에, 조금씩 개선해 나가는 자세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지름길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처럼, 감정이나 에고가 더 이상 나만의 특질이 아니고 우리 모두에게 각인된 공통 프로그램임을 깨닫는 순간, 즉시 많은 인간적인 고통으로부터 해방된다. 도토리 키재기 같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감정과 에고적인 가치관은 비슷한 패턴이다. 누구나 사소한 일로 화를 낸다. 누구나 자기가 더욱 힘들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맛있는 케이크가 먹고 싶고, 내 뜻대로 일이 안되면 조바심을 내고 힘들어한다. 더 이상 이런 일로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 케이크이나 콜라가 정 먹고 싶으면, 1년에 몇 번 먹으면 된다. 먹을 때는 아주 조금씩 맛보며 천천히 먹는 것이 좋다. 화난 일이 있으면 남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화가 날 것임을 인정하면 된다. 그리고 화라는 감정의 옷을 벗는다. 굳이 남들과 같은 색의 감정의 옷을 입을 필요가 없다.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에고나 감정의 집단적인 의견을 따를 필요가 없다. 똑같은 실패로 인해 에고와 감정이 원하는 대로 대부분이 좌절하지만, 그 실패를 교훈으로 느끼고 오히려 교훈을 준 인생에게 감사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 자신만의 객관적인 느낌대로 사는 사람이 그렇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이 세상을 엉망진창으로 여기지만,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고치고 개선할 일이 많은 세상에서 잉태된 아름다움을 미리 본다.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에고와 감정체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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