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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풍 May 23. 2024

동시적인 상호작용.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때 우선 내가 기준이 된다. 내가 지금 어디를 간다면, 지금 내 위치가 출발점이 되고, 내가 일방적으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한다고 느낀다. 만약 상호작용을 인정하면, 내가 이동할 뿐만 아니라, 나의 목적지를 담고 있는 세상 전체가 움직여서 나에게 올 수도 있다. 아니면, 나는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데 지구가 마치 러닝머신처럼 자전을 하면서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주는 지도 모른다. 내가 사과를 먹고 싶기도 하지만, 사과씨가 새로 사과나무를 움틀 공간이동을 위해 나를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좀 더 실감 나게 생각해 보자면, 우리의 탄생에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해 볼 수 있다. 보통 우리는 어딘가로부터 이 세상으로 태어났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 세상을 하직할 때는 어딘지 모르지만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라고 표현한다.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이 세상으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왔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이 세상을 하직할 때도, 이 세상이 나를 떠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러한 상호작용을 잘 설명해 주는 것 같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시간, 공간적으로 뿐만 아니라, 관계 측면에서도 상호작용을 한다. 기존의 사고방식은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일직선에 따라 흐른다고 본다. 그래서 과거의 어떤 원인이 현재의 특정한 결과를 일으킨다는 인과론이나 업보론의 관점이 형성된다. 그러나 모든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상호작용을 한다고 보면, 과거 현재 미래의 인과성은 의미가 없고, 모든 시간과 공간이 상호작용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저술가인 앨런왓츠(Alan Watts)의 언급대로,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구조물은 직선 형태가 많다. 집이나 도로, 다리 등 대부분 인공구조물은 직선을 포함한다. 그러나 자연의 대부분 형태는 곡선이나 휘어져있는 모양이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심지어 시간과 공간도 휘어져 있다. 인간이 시간과 공간의 이동을 일직선 상의 이동으로 느끼는 사고방식이 인공구조물에 반영되어 표현되는 점이 흥미롭다. 일직선적인 사고는 상호작용을 배제한다. 그렇지만 실제 자연과 세상은 휘어져 있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수많은 요인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실제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대부분 인간의 판단은 오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나와 너>의 저자인 마르틴 부버는 인간 존재가 나와 너의 상호성에 기반하고 있음을 말한다. 나는 네가 있음에 존재하고, 반대도 성립한다. 이런 상호작용 속에서의 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나는 독립적이고 타인이나 세상과 분리된 나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런 독립적인 나란 없다. 자연과 세상이 주는 물과 공기, 음식과 배설이 없다면 나는 몇 초도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고 끝없는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정신관리TV)

이 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치 절대적으로 혼자인 내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뭔가 세상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뼈를 포함해서 우리의 세포들은 주기적으로 교체되기 때문에 과거 나의 몸을 구성했던 세포들은 더 이상 없다. 그냥 늘 새로운 세포로 구성된 내가 있을 뿐이다. 우리와 세상은 시간과 공간, 인간관계, 삶과 죽음에서 서로 동시에 다가가고 있다. 시차가 있는 인과작용이 아니라, 언제나 동시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간다. 개별적인 나를 강조하는 관점을 줄여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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