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앎에는 크게 봐서 두 가지가 있다.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 있고, 어떤 상황에 대한 깊은 체험적인 이해가 있다. 1+1은 2라는 학교에서 배운 수학 지식이나 드라마를 통한 간접경험, 그리고 기능적인 사회 규범 등이 단순한 지식에 해당한다. 반면, 깨달음이나 몸소 체험을 통해서 특정 개념이나 사건을 뼛속까지 느끼는 상태가 깊은 이해이다. 같은 단어도 단순한 지식에 머무를 수 있고,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에서 아프리카 아동이 겪는 빈곤 상태를 보고 느끼는 것은 '아 그렇구나' 정도의 지식에 머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성장과정이나 또는 현재 극심한 가난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빈곤이라는 단어는 단지 단어를 뛰어넘어 온몸의 세포들이 인식하는 깊은 느낌이다. 문제는 단순한 지식만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세상을 아는 척하는 경우다.
부처가 보리수나무 밑에서 인생에 대해 얻은 깨달음은 단순한 지식으로는 알 길이 없다. 인간소외라는 개념도 그렇다. 인간소외란 인간 생활의 편리를 위해 고안된 물건이나 제도가 오히려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현상이다. 인간소외 현상을 단지 지식이나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느껴야만 그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사실 사람이 사용하는 대부분의 추상적인 개념이 단지 지식으로만 머물 수도 있고, 아니면 진리로 여겨질 정도로 확실하게 피부에 와닿는 경우가 있다. 후자를 경험하려면, 자신이 어떤 상황에 직접 노출되어야 하고, 그것도 철저하게 경험을 해봐야 한다. 사랑이라는 개념이 가장 대표적일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 또는 시에 등장하는 사랑이라는 개념은 잠시 내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랑이 인간 감정의 하나라는 지식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언젠가 인공지능이 사람의 감정을 이해한다면, 바로 지식 상태의 감정을 이해할 것이다. 인공지능 자신이 깊은 사랑을 해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인 내가 직접 어떤 사람에 대해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면, 지금까지 살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기적적인 현상들을 맛보게 된다. 밥을 안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추워도 춥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서 별빛이 보이고, 그 사람의 손길을 느낄 때는 마치 지구가 흔들리는 것 같다.
배신이나 배반, 또는 의리라는 단어도 자신이 직접 체험해야만 그 개념이 담고 있는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대화 중에 언급하는 많은 단어들이 큰 의미 없게 들리는 이유는 그것들이 말하는 사람의 체험해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고 수많은 지식을 습득한다. 그 대신 인생의 짜릿함이나 처절함을 느껴 볼 실전의 경험은 매우 부족하다. 그래서 평생 남이 떠드는 단어나 개념을 마치 나의 체험처럼 말하면서 살아간다. 그야말로 빌린 인생이다. 그러나 그러한 인생은 남들도 감동시키지 못하지만, 자신에게도 별로 큰 자극을 주지 못한다. 어떤 강연장에서 연사가 자신이 직접 체험해 보지 못한 내용을 청중들에게 전달할 경우에는 청중들로부터의 반응이 별로다. 반대로 신앙적 체험을 간증하거나, 말기암의 극복이나 자연 재난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매우 실감 나게 들린다.
말하고 싶은 점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생각에 빠져 있지 말고 모든 것을 행동으로 체험하는 습성을 길들이자는 것이다. 그 체험의 상태가 어떤 단어나 개념으로 표현되더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직접 빈곤을 겪어 보고, 사랑을 해 본 사람은 그런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경험은 철저하게 해볼 필요가 있다. 애매모호한 경험은 차라리 안 하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어른이 되면,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단어나 개념들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자신의 표정과 행동으로 말하면,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리고 따라온다. 자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거나 진지하게 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부모가 먼저 열심히 공부하고 진지하게 살아가면 자식들이 그냥 그것을 보고 느낀다.
인생을 모든 면에서 깊게 체험하고 사는 사람들은 입이 무겁다. 현대인들은 너무 말을 많이 한다. 카톡이나 댓글도 말이다. 에너지가 낭비될 뿐이고 감동을 주지 못한다. 수많은 신문과 뉴스 매체들이 자신도 들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대중에게 전달한다. 인생이란 살아 보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나 뉴스를 하루종일 듣기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아본 느낌과 이야기를 남들이 알아보고 배운다. 사람은 자주 속이 상한다. 남들이 내 말을 잘 알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말이 진정으로 깊은 체험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단지 나의 술취한 감정을 충족시키려고 나온 것인지 점검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