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에는 예수가 병든 자를 치유해 준 다음 항상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만큼 믿음은 신비한 행위로 여겨진다. 절대자인 신이 인간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기 위해서는 인간이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인간의 믿음은 신의 축복을 받기 위한 전제이다. 문을 바라만 보고 있지 않고, 문을 두드려야 열린다. 밖에 서있는 신을 영접하려면 문을 열어주는 행위가 필요하다. 무엇인가 이성적인 논리나 접근을 뛰어넘는 신비한 영혼의 열림이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은 자신이 믿는 바가 이루어질 거라는 100% 확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흔히 말하는 기적도 믿음의 영역에서는 가능하다.
보통 사람들은 신을 믿으면 영생을 줄 것이라는 점은 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신을 믿는다는 사람도 신이 모든 질병이나 인생의 역경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을 한다. 믿음은 믿음인데 반쪽짜리이다. 그러나 100% 신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면 그런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어린아이가 100% 엄마의 보호를 믿는 것 같은 확신 상태가 진정한 믿음이다. 결국 믿음이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측면의 현실을 수용해야 가능하다. 인간의 오감을 초월하는 무한한 세계가 존재하고 신의 무한한 권능을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바라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은혜의 문이 열린다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니라"라는 구절이 그런 맥락을 설명한다.
진정한 믿음이 반드시 종교인의 전유물은 아니다. 누구라도 절대자의 무한한 은총을 받아들이는 확신을 가진다면, 자신이 바라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 어떤 조건이나 제외하는 분야가 없이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창조주 신이 우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신의 가호아래 나의 병이 치료되고, 원하는 일을 성취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그때부터 신의 역사가 시작한다. 그러나 설마 그런 일이 가능할까라고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그런 믿음은 신비한 문을 열지 못한다. 보통 사람이 100% 믿음을 가지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다. 그러나 조금씩 영안이 열리면 언젠가 영감을 맛보고 전혀 색다른 관점이나 시야가 열리게 된다. 지금까지 이해하던 방식과 전혀 다른 세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