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 종일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무언가를 느끼면서 살아간다. 그런 느낌이나 생각을 나의 표현이라고 여기고, 나와 생각과 감정을 동일시한다. 여기에서 잘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나라는 존재는 모든 것을 의식하는 의식 자체이다. 외부 세상을 의식하고, 나의 몸을 의식하고, 그리고 나의 생각과 감정을 끊임없이 의식한다. 의식하는 자로서의 나는 생각이나 감정과는 분명하게 거리가 있는 다른 존재이다. 의식하는 나는 스스로 나의 생각과 감정을 마치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처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또는 지금 내가 이런 감정에 빠져 있구나라고 알 수 있다. 만약 의식하는 나와 끝없이 흐르는 생각과 감정을 하나의 존재로 동일시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생각과 감정과 거리를 둘 수 있다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외부로 표출하기 전에 수정할 수가 있다.
우리 몸속에 심장과 위가 있는 것처럼, 우리의 뇌 속에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는 기관이 있다고 비교해 볼 수 있다.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는 기관을 마음이라고 부른다. 생각과 감정을 만드는 공장이다. 마음은 의식하는 나와는 다른 내부 기관일 뿐이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생각과 감정은 마치 집에서 기르는 애완견의 수준과도 같다. 늘 뭔가 먹으려 하고, 늘 귀여움을 받고 싶어 하고, 밖에 산책을 가고 싶어 한다. 그 외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없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도 늘 안전하고, 늘 사랑받고,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의식이 매일 경험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면, 우리 몸에는 유익함 보다는 해로움이 넘쳐난다. 일도 안 하고, 늘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술을 마시고, 과식을 할 것이다.
다행인 점은 우리의 의식이 단지 관찰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각과 감정에 대해 방향성을 제시해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동물원의 조련사처럼 훈련할 수 있다. 선한 자세, 근면성, 절제, 건강한 생활 자세를 가르칠 수 있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이 떠오르면, 그것이 원하는 대로 따르지 말고, 그런 생각과 감정이 제시하는 길이 장기적인 삶의 질 제고에 보탬이 되거나 도움이 되는지를 면밀하게 검토해 보아야 한다. 매사에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생각과 감정은 그 내용이 바뀔 뿐이지, 살아오면서 형성된 나쁜 버릇일 뿐이다. 불안이나 걱정이 떠오르면, 심호흡을 하면서, 이런 생각과 감정은 단지 나쁜 버릇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의식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인식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이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까지도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성찰하는 의식의 힘으로 늘 생각과 감정을 옳은 방향으로 지도하고 훈련해야 된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자기 수양을 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면, 거의 90% 이상 옳지 않은 생각과 감정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늘 마음속에서 혼자 억측하고, 단정하는 습관이 있다. 따라서 만약 자주 자신의 생각과 감정 그대로 언행을 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도 떨어진다. 중요한 생각을 할 때마다, 이 생각이 합리적인지, 또는 바른 생각인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마치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점검하는 것과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긴 세월을 살아가면서, 매일매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점검하며 사는 사람과, 그냥 살아가는 사람과의 도달점은 매우 다르게 된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은 우리의 마음속에 형성된 습관이고 버릇일 뿐이다. 나쁜 습관과 버릇을 고치는 것처럼, 나쁜 생각과 감정에 목줄을 채우고 고칠 수 있다. 나의 생각과 감정을 나라고 여기지 말고, 마치 제삼자처럼 분리해서 바라보면 된다. 이제부터는 마음의 공장에서 보다 합리적이고 착한 생각을 하게 되고, 그에 따른 편하고 선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