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슨 글을 쓸까 싶어 괜히 스마트폰 갤러리를 뒤적였다.
블린이가 글감이 없다니.. 참 곤란하면서도 헛웃음이 나온다.
그러다 반가운 사진 발견!
언젠가 도움이 될까 싶어 찍어놓은 비움 체크리스트.
이제까지 비우기를 수차례 진행한 후 현재는 어느 정도 유지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놓친 것이 없는지 리스트를 보며 확인하고 싶었다.
음- 위의 리스트 중 내가 놓친 것은,
폐건전지
추억의 물건
어린이집 용품(가방은 아니고)
사진
이 정도?
이참에 후딱 비우면 좋겠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다 이유가 있다.
일단 폐건전지는 버리려면 주민센터에 가야 한다.
마을버스로 세 정거장 정도 거리이니 그다지 가까운 편이 아닌데,
웃긴 건 그나마 제일 가까운 수거함이 그곳에 있다는 것.
유통기한 지난 의약품 수거함도 마찬가지.
주민센터에 볼일이 생기면 겸사겸사 가야지~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도 웬만한 민원처리가 가능하니 좀처럼 주민센터에 방문할 일이 없다.
그래도 건전지랑 의약품 비우러'만' 가는 건 왠지 시간이 아까운데.. 이런 마음 때문에 여태 비우질 못하고 있다.
추억의 물건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 배냇저고리며- 산모수첩이며- 청첩장이며, 시원하게 비울 수가 없다.
뭔가 우리 집 역사의 시작 같달까?
이것들을 비우면 마음이 무척 허전할 것 같다.
여태 애들을 보여준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나중에 아이들이 좀 더 크면 함께 보면서 소소하게 추억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린이집 용품은 현관 인식 키인데, 그것 말고는 가방도 식판도 다 비웠다. 이건 왜 안 비웠지?
아이들은 유치원에 잘 다니고 있으니, 바로 비워야겠다.
사진은 다름 아닌 결혼 앨범.
아 물론 남편과는 사이가 좋지만, 결혼 앨범은 보기 싫다.
일단 결혼식도 내가 원해서 한 게 아니었고,
결혼 당일 신부화장도 너무 촌스럽게 되어서 이쁘게 나오지도 않았고, 코시국 때 찍은 거라 신랑신부 빼고는 하객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 바로 알아보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첫째 아이가 생후 8-9개월 때 결혼식을 올렸지만, 정작 첫째 아이는 함께하지 못해(코로나 위험 때문)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빠진 그런 행사였다.
결혼식 전날에는 시댁에 내려가며 신랑과 다투기까지 했기 때문에, 결혼 앨범을 보면 온갖 안 좋은 기억이 다 떠오른다.
그래도 여태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주 혹~시라도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셨다가 찾으실까 하는 그런 노파심 때문이다.
결혼 6년 차가 되도록 그런 일은 없었지만, 불시에 찾아올지 모르는 만약을 위해 대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비우지 못하는 물건이 더 있는데,
첫째 아이 수저통에 껴있던 소음 차단용 실리콘은 아이가 불편하다며 빼달라고 해서 뺐지만 언제 다시 찾을까 가지고 있다.
또 일 년 넘게 세탁실 선반 자리를 차지 중인 퍼즐매트 여분도, 지금 쓰는 퍼즐매트가 얼룩으로 상하면 교체하려고 두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퍼즐매트를 교체할 때보다 우리 아이들이 커서 퍼즐매트를 깔아놓은 공간이 줄어드는 때가 더 빨리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결국 비우지 못하는 것은 한~두 줄짜리 이유 때문이고, 비우기 위해서는 그보다 더 중한 명분이 필요하다며 핑계를 대는 것이다.
나는 안다.
한때 적극적으로 물건을 비우고, 이후에도 틈날 때마다 조금씩 비워냈지만,
뒤돌아서면 다시금 비울 물건이 나오는 건, 결국 언제나 남길 이유를 찾는 내 미련 때문이요,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것을.
하지만 또 나는 알고 있다.
비움의 타이밍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결혼 앨범을 비우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카운트다운은 시작됐으며, 기한을 놓치지 않기 위해 때를 노리고 있는 것처럼.
물건 비우기?
다 마음먹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