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사이 몇몇 물건의 소소한 자리 이동이 있었다.
비운 물건도 없고 이렇다할 큰 변화도 없지만, 개인적으로 뿌듯함과 만족감은 상당하기에 기록한다.
먼저 냉장고와 전자레인지 수납장 사이에 있던 6인용 접이식 밥상의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가끔 내려앉은 먼지나 닦아주며 그 자리에 있든 말든 신경도 안 쓰다가,
일 년에 한번 사용할까 말까 하는데 굳이 보이는 곳에 둘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그래서 옷방의 조립식 선반 옆 좁은 틈새로 옮겨주었다.
밥상을 틈새 공간에 쏙 넣어주고, 커튼으로 가려주었더니 그 존재감이 '0'에 가까워진 듯했다.
또, 전자레인지 수납장 뒤 밥상이 빠진 덕분에 그 배경(냉장고 옆면)은 좀 더 깔끔해졌다.
밥상의 새로운 자리 그러니까, 조립식 선반 옆 틈새에는 원래 스탠드형 다리미판이 숨겨져 있었다.
작년에 스팀다리미를 들인 후, 다리미판을 펴고 다림질할 일이 통 없었기에 이참에 비울까 고민했지만, 멀쩡한 다리미판을 버리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또, 다리미판을 버리면 다리미도 비워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하게 너무 아깝고, 언-젠가 사용할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음..
그래서 일단 보관하기로 했다.
옷장 안쪽에 세워 넣고 앞에 옷들을 다시 걸어주었더니 마치 없는 듯 가려져 좋았다.
이대로 당분간 신경 쓰지 않고 살다가 어느 날 "어, 여기 있었네?" 할 정도로 잊었을 때 그때 비우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그전에 사용하게 되면 이대로 함께하는 거고-
다음으로는, 옷방 서랍장 위 물건들을 정리했다.
처음 이사한 날부터 지금까지 서랍장 위엔 언제나 물건이 있었다.
최근엔 탁상달력, 물티슈, 안경 닦는 수건, 빗과 미용가위가 든 컵, 휴지통이 올려져 있었고,
매번 아침마다 벗어놓은 잠옷이 한자리를 차지했다.
서랍장 위에 물건이 있는 것을 당연시 여겼던 내가 물건을 싹 치우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청소였다.
가끔씩 서랍장 위 먼지를 닦아낼 때마다 물건을 옮겨야 하는 것이 귀찮게 느껴졌다.
그 귀찮음이 점점 청소를 게을리하게 하고, 때문에 먼지는 점점 쌓이고, 결국 그 먼지가 우리 가족 코로 들어오고..
그래서 모든 물건을 정리해 봤다.
빗과 가위, 안경 닦는 수건은 서랍 안으로 이동.
휴지통은 깨끗이 닦아 세탁실 캡슐 세제 용기로 역할 변경.
물티슈(건조기 필터 먼지 제거용)도 세탁실로 이동- 캡슐 세제를 보관했던 신발상자에 쏙 넣어주고.
탁상달력은 오려내어 냉장고에 자석 펜꽂이로 붙여주었다.
이제 갑자기 좌담회 일정 연락이 와도, 포스트잇에 날짜부터 적느라 허둥대지 않아도 된다.
잠옷은 빈 옷서랍칸에 넣었다가, 남편이 번거로워할까 싶어 하얀 바구니를 가져다가 쏙 넣어줬다.
처음으로 서랍장 위가 비어있는 모습을 마주했다.
그 모습은 그동안 여백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또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여유. 편안함
이뿐만이 아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하나를 바꾸려다, 덩달아 청소방해꾼에 지나지 않던 물건들이 환골탈태했다.
쓰레기를 채우던 휴지통이 깨끗함 그 자체인 세탁세제 보관 용기로 탈바꿈하고,
잠깐의 가위질로 달력의 형태가 바뀌고 쓰임이 더 편해진 것처럼.
미니멀라이프를 접하고 매번 느끼는 거지만,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당연한 것을 달리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건 비우기든, 정리 정돈이든 "이제 됐다" 하더라도, 이후에 제3자의 눈, 새로운 시각(타인의 눈을 빌리지 않더라도)으로 보면 항상 새로운 문젯거리가 발견된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내가 여태 당연하게 생각해서 불필요하게 갖고, 사용이 불편한 장소에 둔 물건들이 더 있을 거라고 확신하다. 어쩌면 많이 있을지도.
시간이 좀 걸릴 수 있겠지만 나만의 속도로 하나하나 찾아내고 비워내고 바꾸며, 그렇게 나만의 미니멀한 살림을 해보련다.
새롭게 발견할 정리노다지-
정말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