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에 도착한 날, 한 손에 커피와 한 손에 책을 들고 유유히 트램에서 내리는 중년의 남성을 보았다. 반쯤 감긴 눈에 헤드셋과 담배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자유 영혼이 책을 끼고 눈앞에서 사라진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공원에서 책을 읽는 시민
거리를 누비면 책 읽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어느 곳이든 그 자리에서 책을 꺼내면 책과 사람과 그 공간이 작품이 되는 신비로운 도시였다. 금방이라도 매거진룸에서 능수능란한 프레젠테이션을 펼치고 있을 것 같은 한 여성의 벤치 위 독서, 평일 한낮에 진지한 독서 중인 부부… 어떤 청년은 계단을 내려올 듯하다 털썩 앉더니 숨겨둔 책을 펼쳤는데 정말이지 생각도 못 한 장소라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포틀랜드에서 도서관, 서점을 제외하곤 특별히 관광지를 찾지 않았던 이유는 거리의 풍경만으로 볼거리가 넘쳤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분위기, 다채로운 색의 조화, 레일 위 전동차 소리 등 모든 것이 감각적으로 새롭게 다가온 - ‘인상 깊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도시다.
포틀랜드의 독서 풍경
그래서인지 도서관도 내심 특별할 것이라추측했었는데, 오히려 단출한 포틀랜드의 감성을 너무나 잘 반영한 곳이라 허탈한 웃음이 나왔었다. 과한 진지함 없이 가볍게 방문하기 편한, 일상 속 도서관의 모습이다. 입장 시간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학교 정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학생처럼 도서관 앞에서 서성거린다.
도서관 정문
이곳은 도슨트 투어를 운영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서관 홈페이지를 따로 검색해 보았는데 멀트노마 카운티 도서관 아래 여러 지점들이 연결되어 있었다. 카운티(County)는 주(State) 아래의 행정단위이며, 멀트노마(Multnomah)는 행정구역 이름이다. 특별히 중앙(Central) 도서관이라 하여 큰 차별화를 두지 않고, 도시 전역에 고르게 분포된 도서관과 동등한 레벨로 간주하는 모습이다. 시민들의 일상적인 독서 문화가 이러한 자치성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Multnomah County Library 홈페이지의 한 화면
실내는 전반적으로 아이보리&우드 톤의 단정한 이미지다. 로비 벽면엔 층마다 미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편리해 보이는 신식 대여기가 돋보인다. 신문이 선반에 읽기 좋게 놓여 있다.
로비 / 갤러리
대여기 / 신문
PC 공용 공간은 사람의 키보다 높은 커다란 창문들이 눈에 띄었는데, 푸른색이 아른거리는 창문과 벽면에 입혀진 노란색이 대조되어 포틀랜드 특유의 힙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무와 하늘이 비치는 따스한 채광이 실내를 화사하게 비춰주었다. 열람실보다 이곳의 수요가 많아 보였다.
테이블이 있는 PC 공용 공간
열람실
오픈 테이블 외에도 풀썩 앉아있을 수 있는 1인용 좌석, 개인 작업하기에 좋은 프라이빗 존 등이 마련되어 있다. 도서관을 몇 번 둘러보다 보면 카펫의 기능적, 미학적 중요성을 체감하게 된다. 푹신한 카펫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나의 발자국 소리를 줄여주며, 사람들의 잦은 통행에도 때가 덜 타 보이며, 웜톤으로 도배된 벽면의 인테리어를 중화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오랜 시간에도 피로감 없이 안정감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좌석
공간이나 자리의 간격이 넓은 편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서로 무심하고 저마다의 할 일에 충실하여 불편하진 않았다. 사진을 찍고 있어도 관심이 없다. 상호 무심 = 상호 존중 아니겠는가. 이곳을 방문한다면 언제나 그랬다는 듯 책 한 권을 들고 느긋하게 앉아 즐기다 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