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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가뎅 Oct 27. 2024

[북트립] 시애틀 중앙 도서관

도서관 #2. 시애틀

Seattle Central Library

출국 전. 도슨트 투어를 신청했다. 그룹으로만 신청할 수 있었는데 투어를 꼭 하고 싶었기에 지원 계정으로 메일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책을 좋아하는 한국 여행객입니다. 다가오는 6~7일 도슨트 투어를 하고 싶은데 안타깝게도 개인이라 신청할 수가 없네요. 해당 일자에 진행하는 그룹 투어가 있다면 같이 참여할 수 있을까요? 미국 여러 도시의 도서관 방문 예정인데, 그중 시애틀 도서관에 대해 글을 쓰고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날 답변을 받았다.

연락 주셔서 감사해요. 말씀 주신 날짜엔 투어 일정이 없습니다.
하지만, 7일에 간략한 투어를 할 수 있도록 일정을 만들어볼게요. 도착해서 제게 연락 주세요.
Yours, Jeff.


투어 당일. 관광지로 알려진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에서 살짝 떨리는 마음으로 커피를 홀짝이다 목적지로 향했다. 도착까지 마지막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외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조명이 비치는 투명한 유리, 거대하게 뻗어나가는 기하학적 형상의 건물이 뾰족한 콧대를 드높이며 나에게 말했다. “어서 와, 이곳에서 지식의 세계를 마음껏 넓혀 보렴.”

시애틀 중앙 도서관 외관


정문을 들어서니 높게 뚫린 층고에도 불구하고 밝고 따뜻한 채광이 비쳐 아늑함이 느껴졌다. 바깥이 내다보이는 푸른 유리창은 외부와 연결된 듯한 개방감을 주었는데, 동시에 안팎의 구분이 인지되면서 지성인들의 집단에 합류했다는 가벼운 소속감이 들기도 했다. 인포데스크에 새겨진 큼지막한 San-serif 문체가 현대적인 느낌을 더했다.

도서관 메인 홀


"도슨트 투어 가이드 Jeff를 만나러 왔어요."

데스크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고 Level 1에서 대기했다. 정문이 있는 1층은 Level 3, 탑층은 Level 11이다. 대기하는 동안 Children’s Center를 구경했다. 어마어마한 건물 규모답게 키즈열람실 또한 썰렁할 만큼 넓었다. 곳곳에 장식된 희괴한 인형들은 아티스트가 제작했다고 한다.

Chidren's Center


“Nice to meet you, Jeff!”

가이드를 만났다. 백색 머리에 단정한 셔츠, 반바지와 운동화의 캐주얼한 코디가 눈에 띄었다. Jeff는 친절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도슨트 그룹 투어를 했을 땐 알아듣기 어려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좌절하고 있었는데, 그는 매우 이해하기 쉽게 차근히 설명해 주었다. 내가 한국인임을 고려하여 열람실 내 한국 도서 섹션과 여행 서적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운 좋게 1:1로 진행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투어는 Level 1에서 출발하여 Level 10에서 마쳤다. 스태프 전용 공간인 Level 2, 11은 제외하였다. Level 1에서 건물 전체 설계도를 보며 역사와 투어 계획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듣고 시작했다.



Level 1.

역사와 배경 : 시애틀 중앙 도서관은 1891년에 처음 지어졌다. 지금의 건물은 1960년대에 개축한 건물을 허물고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ss)의 설계로 2004년에 새롭게 세워진 건물이다. 층마다 기능이 다르며, 열람실은 2%의 경사로 모두 이어져 있다. 렘 쿨하스의 건축 의도에 대해선 브런치 작가 HER Report님이 보다 자세하게 적어주신 게 있어 참고했다. 요약하면 도서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물음과 유연한 변화 대응을 고려하여 기하학적인 컨셉의 모형으로 구현했다는 것이다. 도서관의 본질을 꿰뚫고 미래지향적 디자인으로 발전시킨 그가 존경스럽다.


Microsoft Auditorium : 마이크로소프트의 후원으로 지어진 강당이다. 맨 뒤쪽 벽면을 오픈하면 Level 3까지 좌석이 이어진다.

Microsoft Auditorium


LEW : Literacy(문해력) + ESL(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을 위한 교육) + World Languages(세계 언어).  Level 1 서가의 나무 바닥에는 전통 활자 인쇄 기법으로 빼곡히 새겨진 11가지 언어의 문장들이 보인다. 앤 해밀턴(Ann Hamilton)의 예술 작품으로 모든 글이 거꾸로 적혀있으며 한글도 있었는데 내용이 다양했다. '이제 그 겨울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궁중숯불갈비를 먹어도 되겠구나' 등등. 이 문장들은 어느 책들의 첫 구절이라고 한다.

LEW


Level 3.

도서관 메인 홀, Living Room이다. 좌석과 함께 은은한 스탠드 조명이 비치된 리딩존엔 초록 잎 무늬의 카펫이 깔려있는데 자연에서 독서하는 것 같은 경험이 의도된 디자인이다. 소파 외 테이블 의자에도 앉아보았는데 보기와 달리 묵직한 무게가 안정감을 주었다. 고무 소재로 보이는 단단한 의자 받침대는 편안했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주었다.

Living Room

Jeff가 포토스팟에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Level 3 포토 스팟

정문 근처 기념품샵은 굿즈뿐 아니라 헌책도 사고팔 수 있다. 수익금은 도서관에 기부된다. 책 사이사이 끼워져있는 종이 질감의 인포 태그가 빈티지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Level 4.

책도 사서도 없는 오직 회의를 위한 공간, Meeting Rooms(1~6). Level 4의 모든 벽면은 강렬한 빨간색으로 입혀 져 있다. “왜 빨간색으로 지었나요?” “도서관의 심장이니까요.”

컴퓨터실, 소회의실, 대회의실, 그리고 하버드 학생들이 주로 사용한다는 Room2를 구경했다. 마침 학생들이 새록새록 한 청춘의 열기를 뿜으며 프레젠테이션 중이었다. 이런 공간에서 미팅하면 어떤 느낌일까.

Meeting Rooms


Level 5.

= Mixing Chamber. 다양한 아이디어와 도구가 혼합된다는 의미다. 이곳은 컴퓨터 사용과 각종 디지털 장비를 지원한다. 블랙&실버톤의 매탈릭한 재질과 오렌지 포인트 컬러가 멈춘 뇌에 기름불을 지피는 것 같았다. Level 5 난간에선 Level 3의 안팎과 독특한 건축 구조를 한데 구경할 수 있다. 이곳에서 Jeff와 함께 셀카를 찍었다. 이미 친구가 된 듯한 Jeff.

Mixing Chamber


Level 6~9.

= Books Spiral. 네 개의 층이 연결된 서재는 형광 노란색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빠르게 올라가는 방법, 각 층의 경사로를 따라 오르며 계단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나선형으로 이어진 경사는 도서 분류 시스템인 듀이십진분류법(Dewey Decimal System, 숫자를 사용해 주제별로 범주를 나누어 정리하는 방법)을 끊김없이 유지하는 데에 적합한 구조다. 쉽게 말해, 도서관의 책이 증가하더라도 모든 층이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기존의 서가를 그대로 확장하여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반영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Jeff가 도서 분류 리스트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한국 도서 섹션을 찾았다. "한국 어디에 살아요?" 지역명을 말하자 여행 서적을 꺼내 도시를 찾았다. "아름답네요."

Books Spiral


Level 10.

= Reading Room. 방문객이 접근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층이다. 독서 테이블과 소파가 마련된 리딩존, 이벤트&휴게, 그리고 역사&문화 컬렉션이 소장된 Seattle Room으로 나뉘었다. 리딩존은 Level 3보다 작고 조용하여 몰입하기 좋은 공간이었다. 이벤트&휴게 구역은 평상시엔 비어있는 편이지만 도서관 영업시간 종료 후엔 결혼식, 강연 등의 행사 공간으로 쓰인다고 한다.

Reading Room


Seattle Room은 닫혀있었으나 특별히 Jeff의 안내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진열대 위 건물의 역사적 순간이 담긴 기록 한 장 한 장이 의미 깊게 다가왔다. 이곳엔 시애틀 스타벅스 1호점의 아기자기한 모형도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쪽엔 Level 10에서 Level 3까지 내려다볼 수 있는 View Point가 있는데 보기보다 너무 아찔해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다.

Seattle Room & Highest Viewpoint



투어를 마치고 Jeff가 앞으로의 행보를 물었다. 4개 도시의 도서관을 더 둘러볼 예정이라 했는데 나의 마음은 이미 시애틀 도서관이 부동의 1위를 차지할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리고 6개 도시의 공립도서관을 모두 둘러본 현재, 다시 바라본 시애틀 중앙 도서관은 여전히 마음속 1위로 자리 잡고 있다. 모든 도서관이 저마다의 역사, 철학, 예술적 가치를 담고 있지만 시애틀 도서관은 전통적인 기존 도서관의 틀에서 벗어나 정교하고도 과감한 혁신을 이룬 상징적인 건물이기 때문이다. 설계자의 사상과 창의성이 대상에 오롯이 표현되었을 때 그 기운은 이용자들에게도 스며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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