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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약이 아니라,
내가 약이 되었다

상처 준 사람을 잊는 방법

by 에밀리아

첫 직장에서

나를 유독 싫어하던 상사가 있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지만
그 사람의 기준이나 취향에서
나는 벗어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내면이 강한 사람이었고,
그 상사는 외면이 강한 사람에게
약했던 것 같다.


퇴사한 뒤에도
그 상사는 종종 꿈에 나왔다.
10년이 넘도록 악몽처럼 나타나
날 괴롭혔고,
그때마다 나는 몸서리치게 싫었다.


그때 왜 소리치고 나오지 못했을까.
왜 더 강하게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을까.
이런 후회들이 나를 붙잡았다.


그렇게 또 5년이 지나
15년쯤 되는 해였다.

같은 상황의 꿈을 꿨는데,
이번엔 달랐다.


그 사람 앞에서 나는
유연했고, 여유로웠다.
화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 순간 알았다.

나는 이제
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당신 같은 정도의 사람이
나를 더 이상 어떻게 할 순 없다’는
어떤 내면의 선언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시간이 약이다”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모든 시간의 약이
망각을 통한 치유인 것은 아니다.


내게 필요한 시간의 약은
잊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성장하며,

나를 다시 세우는 지혜의 약이었다.


상처가 아문 건
시간이 지나서가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내가 ‘다르게’ 살아냈기 때문이다.

시간이 약이 아니라,
내가 약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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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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