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함이 운수대통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모든 이야기를 짜 놓고 그리는 것은 아니다. 첫 그림이 옥수수를 먹다가 한번 그려볼까? 해서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다음은 어떡하지??? 종일 고민했다. 아직은 내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그리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면 너무 어렵고 겁나서 중도에 포기할 것 같았다. 다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린다라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했었다. 실력 없음을 탓하는 대신 닥치고 그려보자라는 결심이었다.
잘해야 한다는, 특별해야 한다는 욕심을 내려놓자 생각이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지금껏 차례에서 밀렸으니 이제는 풀벌레들이 옥수수를 차지하는 것이 속 편한 일이겠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보통 이야기는 '기승전결'을 따른다. 어느 날 하늘에서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툭~ 옥수수가 떨어졌다는 사실이 이 이야기의 '기'라 할 수 있겠고 들쥐들과 산 새 가족이 옥수수를 차례로 취하는 부분을 '승'이라 할 수 있겠지. 이제 이야기는 절정으로 향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갈등은 필수. 그래서 난 풀벌레들이 옥수수를 옮기는 장면에 갈등을 넣었다. 난데없이... 지나가는 이의 거친 발길질에 옥수수는 그만 걷어 차이고 만다. 그도 옥수수를 발견 못한 듯하다.
몇 알 붙어있던 옥수수 알갱이들은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갔다. 풀벌레들도 내팽개쳐졌다. 모두들 어떻게 되었을까? 처음엔 '튕겨 나간 옥수수 알갱이가 흙에 떨어져 비를 맞고 무럭무럭 잘 자랐다.'라는 식으로 구상했다.
뭔가 답답했다. 갑자기 의욕이 떨어지면서 싫증이 났다. 그만하고 싶었다. 조용히 노트북을 덮었다. 그날 저녁 노트북을 다시 열었을 땐 싸악 뒤엎어 버렸다. 하얀 새 파일을 열고 이 장면을 처음부터 다시 그렸다.
흙 위에 살포시 떨어진 옥수수 알갱이들을 땅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개미들이었다.
개미들의 도움으로 옥수수는 잘 심겼고 풀벌레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불운에 굴하지 않고 옥수수 껍질에 이슬을 모아 옥수수가 묻혀 있는 흙 위에 부었다.
신난다! 싹이 난다.
옥수수가 좀 더 자라자 풀벌레들의 힘만으로는 안되었다. 그래서 들쥐들, 산새들 총출동했다.
옥수수는 잘 자랐다. 모두가 힘을 합한 덕에 누구라도 맘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불운이 지나고 보니 행복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잘 되었다. 모두가.
이렇게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6월의 첫 이야기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