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티콘 작가가 될 거야(3)
계속되는 좌절은 나를 아래로 아래로 끌어당겼다.
내가 원래 이렇게 뭐든 안 되는 사람이었나?
생각해보면 난 뭐든 쉽지 않았어.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선례를 찾아보면 여든이 다 되어가는 분이 승인받기도 했었고 초등학생 꼬마가 승인받기도 했더랬다. 어떤 이는 하루 만에 쓱쓱 그려서 통과되기도 했고. 젠장.... 난 너무 감각이 없나 보다. 트렌드도 모르고 재치도 잼병인 아주 재미없는 사람인가 보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더더욱 빵점이고... 겉으로는 이런 감정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실망하는 듯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음.... 일단 부끄러웠다. 뭐가??? 별거 아니라고 큰 소리 빵빵 치더니, 그렇게 밤낮으로 열심히 하더니 그것도 못해? 하는 나 스스로를 향한 비난에 움츠러들어서 아무에게도 표현할 수 없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창피했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런 것도 못하나. 나이가 들어도 실패의 순간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것이 크던 작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면 정말 별거 아닌 실패인데도 말이다. 멋쩍은 마음을 애써 누르고 난 계속 작업을 이어갔다. 일단 네이버 OGQ 마켓에 문을 두드렸다. 다행히 쉽게 열렸다.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그리고, 다음 작업도 이어 나갔다. 카카오 이모티콘 마켓에 들러 어떤 이모티콘들이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며칠 동안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그러다 음식이란 주제를 떠올렸다. 파티음식을 주제로 만들어볼까? 특별한 음식들을 주제로 감정을 표현해보자. 다소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좀 더 정성을 보태어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24개의 움직이는 이모티콘을 만들어야 하니 24장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하루에 한 장씩 그림을 그렸다. A4 크기 정도의 스케치북에 색연필을 꾹꾹 눌러 그림을 그렸다. 정말이지 어깨가 빠질 것만 같고 손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조금 엄살을 보태면 말이다. 하지 않았던 일을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힘든 일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작정하고 그림을 그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따금 과제를 도와야 할 때가 있다. 그때 잠깐씩 그려봤던 것 외에는 딱히 그림을 그린 기억은 없다. 그림을 그리기 위한 색연필도 아이의 것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점점 재미있어지지 뭡니까.
대략 한 달여의 시간을 들여 그린 그림들은 일단 스캔 과정을 거쳤다. 움직이는 이모티콘을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작업을 해야 했다. 셰프를 등장시킬 것이다. 이 많은 음식들을 만든 'Mr.Joo'. '주 셰프'는 밥주걱을 본떠 만든 캐릭터이다. 표정 변화가 별로 없는 무뚝뚝한 그이지만 음식을 만드는 것엔 진심이다. 이번 작업은 아이패드가 아닌 맥북의 포토샵으로 하기로 했다. 남편과 아들이 사용하다가 배터리 문제로 남편도 아들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 방치된 아주 오래된 노트북이다. 작업을 하다 보면 박살날 것만 같은 요란한(흡사 탱크가 지나가는 듯) 소리도 난다. 그 맥북엔 버전이 언제인지 모르는 오래된 포토샵이 깔려있다. 마침 저가 모델이지만 아쉬운 대로 와콤 태블릿도 있었다. 다소 뻑뻑하고 어색하기는 했지만 그림을 그릴 수는 있을 것 같다. 아이패드의 펜슬로 그리는 것이 편하기는 했지만 색연필로 그린 그림을 스캔 후에 편집도 해야 했기 때문에 포토샵으로 작업하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게다가 눈이 너무 아팠다. 잠시 잠잠했던 안구건조증이 아이패드로 작업한 후에 다시 심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까닭으로 20여 년 만에 포토샵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어라... 뭐지? 당연히 버벅버벅. 20년이란 시간은 기억을 깨끗한 백지 상태로 만들었다. 게다가 많이 바뀌었다. 그렇다. 난 윈도우3.0을 사용했던 세대이다. 당연 그 이전엔 DOS도 사용했다. IBM PC도 사용했다. 1번 부팅용 5.25인치 디스켓을 넣고 부팅되면 2번 디스켓 넣고.... 뭐 이랬던 세대다. 당황과 두려움도 잠시, 스스로 내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요즘 나오는 프로그램들은 비주얼이 빵빵하다. 그래서 요즘은 응용 프로그램을 책으로 배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라떼는 말이쥐.... 서점에 가면 컴퓨터 잡지를 비롯하여 각종 컴퓨터 서적들이 서점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다. 요즘엔 그렇지 않은 거 같다. 아마도 직관적으로 배울 수 있어서가 아닐까? 상식적인 내 직관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작업은 그다지 복잡한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 셰프가 정성껏 그렸습니다"
이모티콘이 완성되기까지.
그래서 이번엔 통과되었을까? 맞습니다.
여러분의 예측이 맞았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불발... 정말이지 OTL.
난, 정말 안되려나 보다.
그런데 이번엔 그다지 실망하지 않았다. 24장의 색연필 그림을 그리면서 내적(?) 변화가 있었다. 내가 SNS를 전혀 하지 않고 있더란 사실을 자각했다. 그동안은 딱히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최근 이모티콘 관련 일을 겪으면서 이게 필요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제안서에 이런 유의 계정을 적어내라는 요구가 있었다. 물론 공란으로 두어도 접수는 가능하다. 하지만 나를 알릴 수 있는 계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겠다 싶었다. 그래서 부랴부랴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역시나 버벅거리면서... 그림 계정을 만들고 나자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아주 많다. 어떤 이는 전문가가 아닌 듯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나 보다. 따로 배우지 않았어도 할 수 있나 보다.
그리고 난, 더 이상 이모티콘을 만들지 않았다.
내가 하고픈 일이 생겼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