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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이제야, 아빠를 놓아드립니다

눈물 끝에서 피어난 용서의 시작

by 소망안고 단심

편지를 쓰고 난 밤,

다연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잠을 못 자서일까, 너무 울어서일까.

하지만 마음만큼은 묘하게 가벼웠다.

무겁게 눌러 있던 무언가를 비로소 내려놓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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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창문의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아침 햇살이 다연의 얼굴을 비춘다.

창밖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가지 위에 앉아 있던 새 한 마리가

창문 여는 소리에 놀라 ‘푸드덕―’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다연의 눈이 새의 꼬리를 따라가다 하늘을 본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유난히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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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주방에서 커피를 내리는 다연의 머리카락을 스친다.

오늘따라 커피 향이 진했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향을 들이마신다.

‘좋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커피 향.’

창가 앞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다연의 기분을 낯설 만큼 들뜨게 했다.


“가자, 오늘.”

나지막이 속삭이더니, 다연은 갑자기 분주히 움직였다.

외출 준비를 하며 밝은 색의 립스틱을 바른다.

그 색이 다연의 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창문을 닫으며 다연은 나뭇가지 위의 새에게 인사했다.

“갔다 올게, 이따 보자.”

그 새는 마치 알아들은 듯 ‘찍찍―’ 하고 울었다.

아버지의 장례식 소식을 듣고 달려가던 그 길.

다연은 다시 그 길을 향했다.

하지만 이번 길은 달랐다.

재즈풍 음악이 흘러나오고,

다연의 손가락이 운전대 위를 리듬에 맞춰 두드렸다.


납골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기 전 깊게 숨을 내쉰다.


“후우…”

심호흡 하나로 마음을 다잡았다.


장례식 이후 처음 오는 곳이었다.


납골함 앞에는 작은 소품들이 놓여 있었다.

동생의 손으로 만든 미니어처들,

작은 술병, 오토바이, 그리고 가족사진.

엄마와 아빠가 함께 웃고 있는 사진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어딘가 여행지에서 찍은 듯, 두 사람은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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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 집을 지옥으로 만들던 아빠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술을 끊고

엄마와 자주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엄마는 행복해했지만,

다연의 마음은 오히려 더 닫혀버렸다.

행복해하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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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왔어요, 아빠.”

다연은 낮게 인사했다.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세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아빠… 아프실 때 제가 원했던 건 단 한마디였어요.

‘미안하다’ 그 말 한마디.”

눈물이 다시 고였다.


억지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붉은 조명 아래로 비치는 빛이 눈을 자극했다.


“지금은 하실 수 있나요?

이제야… 미안하다고요?”


그 순간,

사진 속 아버지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다연의 옆에 서서

조용히 어깨를 감쌌다.


‘미안하다, 다연아.

못난 아버지 만나 마음고생 많았지.’


다연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아빠… 내가 미안해요.

단 한 번이라도 따뜻한 말 못 해드린 거,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불쌍하다, 우리 아빠…’

엉엉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빠,

살아보니까 인생이 참 힘들더라고요.

내 맘 같지 않고, 사람도, 세상도 쉽지 않아요.

아빠도 그랬죠?

날 때리고, 소리치고, 미워했던 그 마음도

사실은 아빠의 고통이었죠?”


다연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아빠를 용서해야 하는 거 알아요.

아빠를 미워한 건… 사실 아빠를 사랑했기 때문이에요.

근데요, 가슴이 너무 아파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눈물 속에는 분노가 섞여 있지 않았다.

슬픔과 그리움만이 남아 있었다.


“아빠,

아빠를 닮은 내가 싫었는데…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용서해 보려고요.”


다연은 두 손을 모았다.

“이제 정말… 놓아드릴게요.”


그 말과 함께 눈물이 천천히 멈췄다.

창문 틈으로 한 줄기 빛이 들어와

다연의 어깨를 감쌌다.


그 빛 속에서,

아빠의 미소가

바람에 실려 오는 듯했다.


다연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섰다.


밖으로 나서자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바람은 따뜻했다.


오늘, 다연은 처음으로 ‘용서’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받아들였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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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메모

이제야 아빠를 놓아드린다.

그 말은, 미움의 끝에서 피어난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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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이 글을 쓰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작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글을 쓰며 묻고, 또 묻고,

그 속에서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 갔습니다.

어쩌면 이 글은 ‘용서의 이야기’라기보다,

‘용서를 배우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따라주지 않았고,

때로는 한 문장을 쓰고도 오래 멈춰 서 있었습니다.

연재가 뜸했던 그 시간, 기다려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아마도 미움도, 증오도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 감정일 겁니다.

사랑이 없다면 미움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미워하기보다,

그저 ‘사랑했던 마음이 남은 자리’를 바라보려 합니다.

그 마음으로, 여러분께 이 마지막 편지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같이 읽어주셔서,

그리고 함께 울어주셔서.

그런데…

이제 진짜 끝내려니, 어렵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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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