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화. 죽도록 눌린 밤

증오의 검은 그림자

by 소망안고 단심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다연을 짓눌렀다.
숨통을 조이고, 몸을 눌렀다.
숨 쉬려 할수록 가슴이 더 무거워지고,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살려주세요… 왜? 왜 나한테 이러는데?”
소리치려 해도 목구멍은 꽉 막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고,
마음은 얼어붙은 겨울밤처럼 고요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
온몸이 마비된 채 시간이 멈춘 듯했다.

발버둥 쳐도 손발은 묶인 듯 무거웠고,
그림자는 더욱 짙고 커졌다.
오래전부터 시작된 이 무서운 밤,
끝이 보이지 않는 악몽 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누워 있는 다연의 목 위로 그림자의 차가운 손이 다가왔다.
발버둥 치다 머리가 침대 머리맡에 부딪히는 순간,
깨어났다.

아픔이 느껴져야 했지만,
그 아픔조차도 마비되어 있었다.

“젠장… 철천지 원수 진 것 같네.
이십 년이 넘도록 날 못 잡아먹어서
꿈까지 쫓아오네.”

그림자 때문에 오늘도
다연의 심장은 미친 듯 요동쳤다.

가슴 깊은 곳에서 조용히 끓어오르는 무언가.
슬픔도 아니고, 화도 아닌, 말로 표현 못 할 감정.

머릿속에 떠오른 무심한 얼굴 하나.
그 얼굴이 다연의 표정을 찌푸리게 했다.

“진짜 씨발…”
욕실로 향하던 발걸음이 멈췄다.


“평생 미안한 줄도 모르고 살았으면,
이제 좀 알긴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알아도 미안하단 말 한마디 못 하냐고?”

세면대 물을 틀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왜 아침부터 또 생각나서
기분 더럽게 만드냐고, 진짜…”

찬물을 얼굴에 퍼부었다.
감정이 와르르 쏟아졌다.
수돗물인지 눈물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심장은 쿵쾅거렸다.

현관문을 나서기 전, 잠시 멈췄다.
‘내가 진짜 나쁜 사람인가?’
스쳐 지나간 생각이었지만 곧 밀어냈다.
나쁜 사람도, 착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나’ 일뿐이었다.

길 양옆으로 늘어진 가로수.
오늘은 하늘이 더 파랗고, 바람은 이상할 정도로 잔잔했다.

다연은 파란 하늘과 잔잔한 바람, 지나는 차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세상은 다 행복한데,
아무 일 없이 평온한데,
왜 나는 늘 불행할까?”

나뭇잎은 무겁게 흔들렸다.
마치 다연의 마음처럼.

‘병원에 가야 하나, 학원에 가야 하나…’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괴로웠다.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을 봤다가,
눈을 땅으로 내렸다.
발 앞에 놓인 조그마한 돌 하나.

그 순간 다연은 내뱉었다.
“병신 새끼! 빨리 죽어버리지,
왜 살아서 사람 고생시켜? 평생을.”

눈앞에 그가 있는 듯
발 앞 작은 돌을 힘껏 걷어찼다.
작은 돌은 길가 가로수에 부딪혀 데구루루 굴러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다연은 생각했다.
발에 차여 굴러가는 돌이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며 살아온 자신의 모습 같다고.

돌을 주워
입술을 오므려 바람을 불어 먼지를 털고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미안하다, 다연아.
나라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데,
나는 내가 증오스럽다.”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길, 이 눈물은 마르지도 않네.”

평소 10분 거리인 학원까지
오늘은 20분이 넘게 걸렸다.

학원 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는
밝게 인사하고, 따뜻하게 웃었고,
다정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엔
마주하지 못한
폭발 직전의 감정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 감정의 이름은 —

(잠시 멈춤)

아.

— 아버지.

keyword
화,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