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식은 아버지, 그리고 고요한 그 "아버지"
어두운 밤.
가고 싶지 않은 길을, 다연은 밟고 있었다.
지방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이 차창을 스쳐 지나가며, 잠깐 다연의 얼굴을 비추다 사라졌다.
그 빛이 사라질 때마다, 다연은 혼자 남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그날 밤처럼.
그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오토바이를 몰던 날.
다연은 그 뒤에 타고 싶지 않았지만 탈 수밖에 없었다.
좁고 울퉁불퉁한 시골길.
바람 소리는 울부짖는 괴물처럼 귓가를 파고들었고, 술 냄새가 역겹게 따라왔다.
비틀거리던 오토바이는 돌부리에 걸려 농두렁 밑으로 처박혔다.
다연은 저 멀리 날아가 땅바닥에 내동 이쳐졌다.
귀에 울리던 바람소리와 심장소리가 하나로 섞여 세상이 삼켜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날의 숨 막히던 공기와 같은 감각이, 지금 다시 찾아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고속도로 위 차가 도로 가장자리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급브레이크.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긁는 소리.
차는 도로 외곽에서 멈췄다.
다연은 핸들 위에 이마를 댄 채,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젠장… 죽어서도 도움이 안 되네. 하필 오늘이라니.”
아침부터 가슴속에 걸려 있던 불길한 덩어리,
결국 이게 그 정체였다.
퇴근 준비 중에 걸려온 동생의 전화.
“돌아가셨어. 병실로 오면 돼.”
뚝— 삐- 삐- 삐―
아무 설명도, 아무 감정도 없는 끊김.
“동생년까지 날 무시하네…”
입에서 새어 나왔지만, 화도 나지 않았다.
무시당하는 건 이미 너무 익숙했으니까.
심심장은 뛰지 않았다.
다만 묵직한 무언가가 가슴을 막고 있었다.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다연은 그 울음을 따라 병실로 향했다.
병실은 고요했다.
기계들은 모두 꺼져 있었고, 그는 하얗게 식어 있었다.
어릴 적 매일 맡던 술 냄새가, 죽은 그의 몸에서 풍기는 듯했다.
“이 사람이… 이렇게 작았나?”
손을 잡아보려 했지만 차갑게 굳은 손은 다연을 밀어내는 것 같았다.
식어 있던 그가 금방이라도 일어나 두 눈을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며,
침대 옆 링거대라도 들어 휘두를 것 같았다.
순간, 다연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워 있는 그가 두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환영이 스쳤다.
놀란 다연은
맞지 않으려는 듯 양팔로 머리를 감싸며 병실 한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농두렁 밑으로 처박혔던 날처럼….
그날, 땅바닥에 쓰러져 있던 다연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
‘차라리 지금 죽었으면… 나 이렇게 아픈데 왜 안 죽지?’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그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다연을 찾았다.
멀리 쓰러진 다연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귀에 울려 퍼지던 발걸음 소리.
코끝을 스치던 술 냄새.
“괴물, 괴물…”
“오지 마. 오지 말라고…”
병실 구석에 몸을 숨긴 다연의 귀에도,
그날 밤처럼 뚜벅뚜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양팔로 머리를 더 단단히 감쌌다.
그 순간
“누나! 뭐 해, 거기서?”
“소리 왜 질러? 사람들 놀라게…”
남동생의 목소리였다.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
다연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죽은 후에 오길 잘했어. 살아 있을 때 왔다면, 나를 죽였을지도 몰라.”
그는 오랜 투병 동안, 마지막 순간까지
“미안하다” 한 마디조차 하지 않았다.
다연은 간절히 원했다.
“제발… 죽기 전에라도 나한테 미안하다 말해줘.
그럼 조금이라도 아빠를 용서, 아니 이해해 볼 수 있을 거야.”
다연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단순한 사과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새겨진 상처는 어른이 된 지금도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이해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 말 한마디를 원했다.
하지만 끝내, 아무 말도 없었다.
병실은 울음바다였다.
엄마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여동생은 제부의 무릎에 머리를 묻고 울었다.
제부는 묵묵히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하지만 다연의 눈은 말라 있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먼저 치솟은 건 슬픔이 아니었다.
목덜미를 움켜쥐듯, 수십 년간 몸속에 뿌리내린 원망과 증오였다.
다연은 시트를 움켜쥐며 속삭였다.
“정말… 미안하단 말, 한 마디도 없네.
당신은 끝까지 무책임한 아버지였어.
죽음 앞에서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그리고 마침내,
다연의 울음처럼 터져 나온 독백.
“아빠, 제발 일어나. 이렇게 죽으면 안 되잖아.
그럼 나는? 내가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이 상처는 어쩌라고.
나는 아빠를 원망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아빠, 나 너무 힘들어. 단 한마디… ‘미안하다’ 그 말만 해줘.”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순간,
오래전 그의 고함이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장례식장은 고요했지만,
다연의 안에서는 여전히 그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다연은 오늘, 평생 붙잡아온 단어 하나를 끝내 듣지 못했다.
그 한마디가 없는 세상에서, 그녀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