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유학 이야기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가 ‘내 아이는 사막에서도 장미로 자랄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한다. 아이를 믿는다는 말에, ‘내 새낀데 네가 설마 꼴찌야 하겠냐?’는 은근한 자부심이 들어있다는 뜻이다. 남들처럼 학원에 보내지 않더라도 알아서 잘 크고 나중에 공부도 중간 이상은 할 거라는 믿음, 그게 아니고서야 아이를 믿는다는 말이 쉽게 나오겠냐는 소리다. 뼈를 때리는 이 말을 듣고서, <믿는다>는 말의 정의를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진짜, 꼴찌를 해도 괜찮아?
믿는다는 말을 떠들고 다니기 전에, 나는 먼저 솔직해져야 했다. 내 아이가 꼴찌를 해도 정말 괜찮은가? 미안하지만 난 매우 안 괜찮다. 초등 저학년이라면 웃으며 넘길 수 있겠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9등급을 받아오면 솔직히 괜찮지 않을 것 같다. (초등 저학년이라도 웃고 나서는 문제집을 사러 나갈 것이다, 나는 아마도.)
그러면 어디까지 괜찮은 걸까?
아이와 나는 매 학기 새롭게 계약을 한다. ‘국어, 수학 단원평가에서 한 번이라도 85점 미만을 받으면 문제집을 사서 공부한다.’ 초3 때 복직하며 아이와 내가 맺은 첫 번째 계약 조건이었다. 아이는 매번 아슬아슬하게 맞춰가며 2년을 문제집 없이 버텼다. 그 후로도 학기마다, 방학마다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목표는 학교 교육과정을 잘 따라가는 것, 그 이상의 것은 요구하지 않았다. 계약 조건을 맞추기 위해 아이는 스스로 노력하는 법을 배웠다. ‘엄마! 단원평가는 절대 안 배운 건 안 나와!’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꾸준히 계약을 갱신하며 지켜본다.
아무래도 문제집을 좀 해야겠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문제집을 ‘좀’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전 과목을 듬뿍 안겨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몇 권만 골라줬다. 방학 내내 아이는 공부를 했다. 아니, 사실은 공부도! 했다. 올봄, 생각지도 않게 입학이 미뤄지면서 나와 두 아이는 3개월간, 24시간을 꼬박 함께 보냈다. 우리는 그 기간, 거의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신기하리만치 죽이 잘 맞았다. 농촌유학 생활 1년의 보람일까.
믿는다는 말은 거리를 둔다는 뜻이다. 한 발짝 떨어져 지켜본다는 말이다. 믿는다는 말을 내버려 둠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오히려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제대로 된 책은 얼마나 읽었는지, 매번 지켜보고 매번 제안한다. 다만 거리를 둘 뿐, 다만 잔소리를 꿀꺽 삼킬 뿐.
<수학적 정의>
믿다. [동사]: 아이와 나의 심리적 거리를 d라 할 때, 0 < d < infinite를 유지한다.
(학교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의 [70, 100]% 구간에 너의 성취가 존재할 것이라 여기며).
농촌유학생이라고 공부를 안 한다고 생각하면 그건 사실 매우 곤란한 일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충분히 양질의 교육을 받는다. 도시아이들처럼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지 않을 뿐. 분명한 건, 내가 아이에게 거리를 둘 수록 아이는 더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해 나간다는 사실이다. 한발짝 떨어져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입은 꾹 닫는 일, 나에게 믿는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나는 네가 네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것을 믿는다.
그 과정에서 흔들림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그럴 것을 믿는다.
그러나, 너무 멀리 가버리면 힘들다.
그러니 아들아, 공부도 놓지는 말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