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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니카의 참견 Feb 19. 2024

종결되지 못하고 중단

삼십삼 년이 되어도 이해하지 못할 어르신월드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전화부터 걸었다. 두 달 전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신 Y어르신댁을 방문하기 위해 약속을 잡으려고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으신다. 3개월 전 다리를 수술하고 꼼짝도 못 하시는 어르신은 기어이 퇴원을 고집하셔서 집으로 나와 계신 지 한 달이 되었고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해 침대에 갇혀 계시니 돌보는 어머니마저 집에 갇혀 지내시니 집 전화를 받지 않으실 리 없었다. 보건진료소장으로 근무하는지 어언 삽십삼 년이 되었는데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어르신월드'이다. 지난해 12월 그날도 그랬다. 경로당을 방문하여 낙상 예방 교육을 하면서, [겨울에는 해가 늦게 뜨고 기온도 영하이니 너무 깜깜하고 추울 때는 바깥출입을 자제하시고 아침 식사 후 해가 퍼지면 운동을 하시라, 혈관이 수축되어 뇌졸중이나 심장 마비의 위험이 높고 깜깜하여 넘어질 위험도 크다]라고 자세하게 교육을 했고 '네'하고 대답도 시원하게 다들 하셨었다. 그래놓고 딱 일주일 후 새벽 6시에 운동을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그 소식을 듣고 기가 막혔다. 교육을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한글 가르치듯 상세하게 말씀을 드렸지만 칠십, 팔십 년 동안 굳어진 자신의 습관과 생각대로 행동하고 말한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르신월'드를 만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하고, 또 한다. 내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이다.


 그렇게 산산조각 난 다리를 수술하고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는데 한 달 전 다시 경로당을 방문했을 때, Y어르신이 퇴원해서 집으로 왔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집을 방문했다. 새로 리모델링을 한 주방 한편에 접이식 침대를 놓고 누워 계시는 어르신은 이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뼈만 남은 모습이었다.

'이런 상태신데 어쩌자고 퇴원을 하셨어요?'

나의 물음에 어머니는 반 우는 목소리로 '그럼 어쩌냐'라고 하셨다.

'집에만 가겠다고 어찌나 떼를 쓰는지 당할 수가 있어야지. 저렇게 못 먹어서 빠짝 말라가지고 있는 사람을 죽만 먹이고 링거만 꽂고 해주는 것도 없으니 차라리 집에 데릭  나가서 밥이라도 제대로 해 먹여야겠다 생각했지....'

위험천만한 상태에 방치된 환자를 놓고 반복해서 쏟아내는 밥 못 먹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인 '어르신월드'


 어르신의 상태를 눈으로 스캔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가래가  끓고 있었지만 심호흡과 기침을 못해 배출을 못하는 상태, 이미 근육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모두 소실되어 일어나 앉히면 몸이 옆으로 넘어가는 상태가 우선 심각했다. 우선 어머니에게 목도리나 스카프나 넥타이를 찾아 달라고 하니 소창을 들고 나오셨다. 소창 세 가닥을 댕기처럼 엮어 침대에 묶어 어르신이 그걸 잡고 일어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가래 배출이 안되니 폐렴이 걱정이었다. 일단 등을 자주 두드려 심호흡과 기침을 하게 하며 어머니에게도 교육을 시켰다. 어르신 댁을 나서며 마음이 착잡했다.

"당장 병원에 입원하셔야 해요. 뼈가 붙는 건 시간이 흐르면 되는 일이지만 지금 아버님은 폐렴 합병증이 제일 걱정이에요......"

"우선 뼈가 붙어야 운동을 하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르신월드를 또 만나는 순간이다. 전문가의 말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더 믿고 따르시는 분들.


 사무실에 돌아와 Y어르신을 집중 관리 대상자로 등록을 한 후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 보았다. 명절 직 전이어서 일단 명절 연휴 지나서 다시 방문을 하기로 하고 최우선 순위 문제인 폐렴 예방을 위해 심호흡을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민 끝에 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 문구점에서 풍선을 한 봉지 샀다. 천 원이었다. 문구점 사장님께서 '하트 모양, 긴 모양, 그냥 둥근 모양 중 어느 것을 드릴까요?'라고 하셨다. 4년 동안 한 덜에 한 번 이상을 만났던 분이었고 마을에 가면 반갑게 맞아 주시고 내 방문 가방도 빼앗아 들어주시던 어르신. 혈압과 혈당도 콜레스테롤도 항상 정상 범위여서 이 마을에서 제일 오래 사실 분이라고 함께 웃던 어르신. 마음 같아서는 하트 모양 풍선을 살까, 했지만 그냥 둥근 모양으로 샀다. 이 풍선을 불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근력 강화를 위한 손 지압기와 풍선을 가방에 넣고 출근하자마자 방문 약속을 잡으려고 전화를 걸었지만 통 받지 않으셔서 어머니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진료소장이에요. 집 전화를 안 받으셔서. 어디 가셨어요?'

'으응... 소장님.... 아이고.... 영감이 죽었어....'

'네? 아니 어떻게....'

'어젯밤 12시에 죽어버렸어......'

'아이고.....'

'경찰이 오고, 119가 오고... 난리도 아니었어..... 소장님, 어떻게 우리 영감 불쌍해서....'


 일이 손이 잡히지 않는다. 방문 가려고 쌌던 가방을 다시 푼다. 천 원에 한 봉지인 풍선과 손 지압기를 놓고 하엽 없이 바라본다. 울컥울컥 눈물이 솟는다. 집으로 가겠다고 완강하게 고집을 피우고 꽹과리 치는 장단으로 침대를 쳐서 같은 병실 환자들에게 역정을 듣고 병원에서 주는 죽이 싫다고 했어도 퇴원을 해서는 안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딱하다. 


 집중 관리 대상자 종결이 아닌 중단을 기록하는 손가락이 굳는다. 중단 사유는 대상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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