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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글방 Jan 10.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만큼 크게 외치기] 묘

고백합니다. 이것은 정말 고백입니다. 어쩌면 고해성사에 가까울지도요. 우리는 지금까지 3번을 만났지요? 4번째 만남도 전에 이런 취향을 고백하면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고민을 안 할 수 없었지만 나는 이미 객관성을 잃은 지 오래고, 만일 저새키 뭐야?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셔도 만회의 기회가 4번 정도 남았으니까요.. 저새키 뭐야? 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시기를…. 남은 4번의 만남에서 오늘의 고백을 만회할 만한 매력을 발산할 수 있기를…. 아멘…


파들파들 떨면서 긴 서문을 쓴 이유는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페드로 알모도바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알모도바르를 좋아하시나요?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살짝 소개해보자면 그는 스페인 출신의 영화감독인데요, 한국 밖에서 한국 영화! 하면 봉과 박을 떠올리듯 스페인 영화! 하면 떠오르는 감독 중 하나입니다. 대표작으로는 <그녀에게>,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 등등이 있고요.


저는 그가 그려내는 세계의 광팬입니다. 내가 다른 생을 살 수 있다면 그의 영화 속 부엌에 자리한 빠알간 도마가 되고 싶을 정도로, 영화 속에 나오는 수면제가 가득 든 빨간 가스파초를 삼키고 잠드는 역할을 맡고 싶을 정도로요.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특징 세 가지를 뽑아본다면 1. 빨갛다 2. 수다스럽다 3. 지저분하다 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그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는 영화의 미감적인 부분, 특히 색채에서 탁월함을 보입니다. 원색의 레드를 중심으로 온갖 색이 화려하게 쏟아지지만, 시선이 분산되지 않으며, 하나하나 조작해 진공포장 된 듯한 세트가 아닌 정말 좋은 취향을 가진 누군가가 평생을 들여 가꾼 듯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특기입니다. 이와 관련한 게임을 하나 제안해 보겠습니다. 당장 왓챠에 들어가 페드로 알모도바르를 검색하고 아무 영화나 눌러 아무 타임라인에 재생 바를 올려놔 보시겠어요? 저는 그 화면에 빨간색이 존재하며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우리라는 것에 한 표를 걸겠습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 게임을 여러 번 반복해도 아마 제가 질 일은 없을걸요? 제가 이 세계에서 유격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알모도바르의 미감임이 분명합니다.


또 그의 영화는 수다스럽습니다. 음…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를 예로 들어볼까요? 영화의 메인 줄거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애인에게 자동응답기로 이별 통보를 받은 페파의 심적 변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애인의 본처가 페파에게 가지는 분노, 시아파 테러범과 밤을 보낸 페파의 친구, 애인과 살던 집을 내놓자 그 집을 보러온 한 커플, 애인의 새로운 여자 등등의 이야기가 동시에 흘러나옵니다. 그러니 당연하게 플롯이 지저분할 수밖에 없겠죠. 세련된 스토리는 알모도바르의 영화와는 먼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그의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영화의 어법이 할머니들의 말하기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점 때문입니다. 아파트 옆 동의 인생 기구한 아줌마가 투신자살 시도한 이야기, 곗돈 들고 튄 미친개가 뜯어먹을 년 이야기, 윗윗집 여자가 나이 사십에 혼자 살더라는 이야기, 경로당 막내 할머니가 처녀 시절에 납치당할뻔한 이야기 그러니까 백열등이 깜빡이는 아파트에 앉아 멸치 똥 따면서 들었던 이야기들 말이에요. 쓰레기 같은 남자들과 가부장 사회, 그럼에도 살아가는 여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던 그 이야기들이 스크린 위에서 재현됩니다. 할머니들 특유의 자주 깜빡깜빡하고 갑자기 다른 이야기가 튀어나온다거나 낄낄 29금 유머가 등장한다는 디테일까지 살려서 말이에요. 할머니 손에 자란 저는 그런 어법을 사랑하지 않는 법을 알 수 없고 먼 스페인 여자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건 창작자의 자아일 때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요소인데, 어릴 때부터 들어온 가장 친숙한 어법이 신변잡기 적이며 공적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어법이 아님을 밝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좋아하는 영화감독을 묻는다면 아녜스 바르다, 에릭 로메르정도를 이야기하고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아주 작게 정말 작게 묵음처리 하듯이 흘려 넘기곤 합니다. 누군가 그 작은 소리를 듣고 되묻는다면 아주 당황하면서 나를 변호하고요. 그 이유는 말이지요…


그의 영화는 성적으로 대담하며 폭력을 묘사하는 것에 거침이 없습니다. 그는 미감적인 부분에서도 탁월하지만, 여성의 중첩되는 정체성과 욕망을 포착하고 재현하는 능력 역시 뛰어납니다. 동시에 여성을 아주 물화시켜 그려내기도 하죠. 그의 어떤 영화들은 페미니즘 문화 연구에 자주 인용되며 여성 주체를 잘 그려내는 감독으로, 여성 서사(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영화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거론되며 많은 페미니즘 영화제,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됩니다. 그의 또 다른 영화들은 수많은 페미니스트에게 비판받고 있으며 역겨운 남성중심적 영화라는 평을 듣습니다. 기묘하지요? 더 재미있는 것은 그의 초기작이 여성 혐오적이고 후로 올수록 페미니즘적이 된다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아닌, 두 가지 성향의(이것을 성향으로 부를 수 있다면.) 영화가 얼기설기 엮이며 그의 필모그래피가 직조된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를 받은 페파를 필두로 가부장적 남성, 비도덕적 남성으로부터 상처받은 여성들이 싸우고 연대하고 배신하는 이야기를 그린 신경 쇠약 직전의 여자 (1988) 이후에, 조현병에 걸린 남성이 여배우를 납치해 폭력을 행사하고 그에 연민을 느낀 피해자가 가해자를 자발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영화인 욕망의 낮과 밤 (1990) 을 제작하고 바로 일 년 뒤에는 엄마의 삶보다 자신의 삶을 선택한 여성과 그의 딸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하이힐 (1991)을 제작하는 식입니다.


어떻게 눈물 나도록 좋은 영화와 개 똥영화(그러나 화면은 눈시리도록 아름다운)를 동시에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죠? 처음엔 배신감에 치를 떨며 그의 영화를 다신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곧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알모도바르만큼 엄마 혹은 딸인 동시에 여자인 사람의 욕망과 불안을 화면에 감각적으로 잘 펼쳐놓는 감독이 없기 때문이고, 그의 영화를 보는 것만큼 쉽게 자극적이고 아름다운 화면을 만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의 영화와 완전히 화해하게 된 날은 1년 전 이즈음이었는데요, 그의 이중적인 여성관에 혼란스러워하며 온갖 논문과 인터뷰를 뒤지던 어느 날 한 인터뷰 영상을 발견합니다. 그가 만들어낸 여성 캐릭터들은 모두 어릴 적 그를 키우고 교육한 여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그가 자란 지역은 매우 가부장적이어서 남성들은 모두 밖에 있었기에 자신이 볼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집을 운영하고 노동하는 여성들이었고 그들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이야기하는 인터뷰였는데요. 그 영상을 하염없이 돌려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느껴지세요?


힌트를 조금 드릴까 봐요. 알모도바르의 영화는 대체로 정신없고, 막장이지만 나를 둘러싼 세계는 온통 빨갛고 아름다운 데다가 끝날 때 즘 되면 영화 내내 얽혔던 누군가로부터/ 어떤 장소로부터/ 최종적으로는 그 시간으로부터 떠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인 채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면서 끝납니다. 아주 고전적이고 낡게 느껴지지만 그게 좋아요. 그게 …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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