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만큼 크게 외치기] 어진
깨끗한 마음은 청소와 닮아서, 산뜻한 마음을 느끼고 싶다면 청소만 한 게 없다. 생각하기도 싫은 구린 시간을 보냈다면 그 마음을 벗겨내는 데 청소를 적극 추천한다. 덜어내고 닦아내는 행위만큼 시원한 것은 없으니까. 내 발이 아닌 것 같은 통증을 안고 집에 돌아와 나름대로 봐 줄 만한 집을 보면서, 깨끗한 마음이란 이런 거구나 느끼는 것. 청소에서 그 마음을 찾아본다.
먼저 언제부터 이 색이었는지 모를 분홍색 고무장갑을 낀 채 잔뜩 쌓인 그릇 앞에 선다. 오잉 내가 이런 음식을 먹었던 적이 있던가 하면서 적당한 온도의 물을 틀어준다. 끈적하고 기름진 그릇들을 물로 씻어내면서, 세제도 묻히고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다시 물로 씻어 내린다. 차곡차곡 쌓인 그릇과 수저에 맺힌 작은 물방울을 보며 후하 한숨 크게 돌린다.
- 먼지처럼 엉키고 들러붙은 마음을 세척하는 첫 번째 순서다.
커다란 봉지를 꺼내 캔과 플라스틱, 종이와 비닐을 각각 분리해준다. 지구에 빚진 흔적을 보며 인간은 언제까지 이렇게 사는 걸까 생각하면서. 이때 중요한 것은 1차로 세척된 마음이 놀라지 않도록 빠르게 흰 봉투에 나눠 담는 것이다. 나눠 담긴 빚의 흔적들을 꽁꽁 묶어 현관문 열고 계단을 내려가 쓰레기 수거 장소에 내 흔적을 놓고 온다.
- 적당히 비겁했지만 꽤 신났던 마음을 두고 오는 두 번째 순서다.
식탁 위에 놓인 복숭아 홍차 병, 전날 먹었던 빵 부스러기, 10시간 넘게 닫히지 못한 아이패드와 노트북, 쓰다 만 노란 종이와 뚜껑 열린 남색 펜, 깜깜한 밤 하늘 목련 필름 사진이 널브러진 식탁 위를 바라보며 접혔던 허리와 목을 펴준다. 정리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라 보이는 물건 줄 세우기를 하며, 식탁 위에 내 저녁밥이 들어갈 한편을 마련해준다.
- 비좁았던 마음을 내어주면서 나도 좀 괜찮은 사람인가? 하는 세 번째 순서다.
침대 위에서 거의 뛰쳐나가다시피 맞이했던 아침의 흔적을 발견한다. 베개를 정리하고, 4월 운세를 듣다 잠들었던 이어폰을 돌돌 말아주고, 내 잠버릇으로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브로콜리 인형을 잘 눕혀준다. 끝으로 작은 침대에 2인용 이불을 욱여넣었던 내 작은 욕심을 들어 탈탈 털어준다.
- 2인용 이불처럼 조금은 무리했던 마음을 단단히 펴주는 네 번째 순서다.
회색 타일에 낀 검정 물때와 곰팡이가 쌓인 화장실로 들어간다. 출처 없는 색상은 동일하지만, 용도가 다른 분홍 고무장갑을 가져와 팔꿈치까지 씌워준다. 거름망에 모인 머리카락을 집어 올리고 철 수세미와 샤워기를 들고 거침없이 화장실을 벗겨낸다. 이런 곳에도 물때가 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마음을 벗겨내는 다섯 번째 순서다.
알맞게 충전된 무선 청소기를 들고 집 안 구석구석을 흡입한다. 집안의 모든 흔적이 청소기 먼지 통에 모이는가 싶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청소기 돌린 곳에 여전히 몇 개의 먼지들이 남아있다. 이놈의 머리카락은 사실 내 머리에서 자라는 게 아니라 거실에서 자라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네가 생각하는 그런 완벽한 청소는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몇 번을 청소기로 다시 흡입해보다 귀찮아서 그냥 두기로 한다.
- 뭐 대단히 무결점의 것은 세상에 없다는 당연한 마음을 다시 듣는 마지막 순서다.
깨끗한 마음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이는 아마 당신이 매일 하는 행위일 수도 있겠고, 나처럼 즉흥적이거나 게으른 사람이라면 간헐적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깨끗한 마음을 만드는 것은 나도 하는 일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