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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자글방 Jan 16. 2024

욧빠라떼마스

[좋아하는 만큼 크게 외치기] 퍼핀

요즘 들어 쉽게 취한다. 이것이 본래 내 주량이라고 생각될 만큼. 친구는 자신도 스무 살 때는 주량이 3병인 줄 알았다고, 원래 주량은 스무 살에 잠깐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축╺ 하고 나른해지는 정신 속에서 웃음이 비죽비죽 새어 나오는 것이 나쁜 기분은 아니라서 그런대로 즐기고 있다. 그러다가 조금 더 몽롱해지면 자주 입으로 “욧빠라떼마스-”라고 웅얼거린다. 좋아하는 영화의 가장 좋아하는 장면에서 스쳐 지나가듯 등장하는 대사인데 원문은 “"はい, 酔っぱらうています"로, 네 취했어요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세 시간 남짓한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고작 그거라니. 하지만 원래 좋아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술을 마실 수 있게 되면서 취한 탓에 우발적으로 폭력적이게 되었다는 사람들을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잔을 들고 있던 손에서부터 힘이 조금씩 풀리고 점차 온몸이 가벼워지는 이 나른함 속에서, 나의 앞자리에 앉아있는 사랑스러운 친구에게 깊은 마음을 점점 더 작게 속삭이게 되는 이 다정 속에서, 어떻게 미운 구석을 찾아내는 것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정말로 그저 사랑만이 가득해지는 세상인데! 


인터넷 밈에서 취한 상태를 평소 관심 없던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으로 정의하는 것을 본 적 있는데, 그 밈이 품고 있는 어떤 성애적인 유머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 문장의 문자 그대로는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사랑이 가득해진 세상에서는 사랑스러운 것들을 더 잘 찾아낼 수 있기에. 유난히 불친절한 술집 사장님이 늘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 신중한 마음으로 가게 분위기에 맞는 플레이리스트를 선정하기 위함이라는 것, 전력을 잡아먹는 흉측한 네온사인이지만 그 빛이 보라색이 잘 어울리는 친구의 얼굴을 알맞게 비춰주고 있다는 것. 이런 정말 작지만 분명 사랑스러운 것들을 말이다. 또한 사랑이 가득한 세상에서는 사랑을 뱉는 것도 조금 더 쉽다. 내가 사랑스러운 것들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그 세상의 일부일 뿐이기에. 이 사랑에는 어떠한 이유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사랑하는 것. 내가 정말 사소하고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하여도 그걸 듣는 사람은 분명 그런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나를 사랑해 줄 것이니까. 


그렇지만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냐고 묻는다면 크게 망설이지 않고 아, 그건 아니라고 답한다. 나는 아침잠이 많아 늘 밤이 더 바쁜 편이고, 간간히 있는 숙취를 자주 감내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또 입이 짧은 편이라 맛있는 음식들을 먹다 보면 미(味)적으로 떨어지는 술에게 위를 내어줄 자리가 생기는 일도 적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술을 자신의 폭력성의 근거로 삼을 때마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공포에 별로 잔을 입에 대고 싶지 않아진다. 그 분노와 공포를 완전히 말해낼 수는 없지만 그것들의 기저에는 곧은 정신으로 힘껏 모든 것의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세상에 내가 더 자주 던져져야만 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정도는 말할 수 있다. 정리되지 못했기에 함부로 뱉지 못하는 마음을 어떻게든 전하기 위해 생기는 어색한 정적과 침묵의 필요성을 알기에. 사랑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은 찾지 못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를 다시 찾게 되는 좌절의 필요성을 알기에. 하지만 또. 그것들이 너무 벅차 지칠 때면 간절하게 욧빠라떼마스-를 중얼거릴 것 역시 안다. 그 지친 마음을 잠시 뒤로 하고 모든 것들의 사랑스러운 지점을 조금 더 쉽게 찾고, 쉽게 뱉는다. 어쩌면 설명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이 존재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잠에 든다. 다음 날 몰려오는 찌뿌둥한 숙취에 다시 꼿꼿하게 모든 것의 이유를 찾을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그런다. 좋아하는 것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다시 웅얼거린다 “욧빠라떼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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