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 더 살아보기로 했다] 몽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한 학기 동안 수업에서 뭘 배우고 느꼈냐는 어려운 질문에 몇 분씩이나 술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손에는 땀이 조금씩 베어 오고, 내 차례가 되면 뭐라고 답할지 머리를 굴려 보지만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초조한 와중에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가 기울여진다. 이런, 조금 어리버리 해 보이던 남자도 제법 잘 말한다. 결국 생각이 엉망으로 뒤섞인 채로 내 차례가 되어 입을 연다. “허허… 다들 말을 참 잘하시네요…” 멋쩍은 웃음으로 입을 열고 스스로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는다. 역시 난 시간이 더 필요해. 부끄러운 마음으로 생각한다.
그 수업은 내게 인생의 목적을 찾으라고 했다. 인생의 목적을 찾아 착착착 스텝을 밟아나가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도 했다. 그 일환으로 50년 뒤 나의 모습 그려보기, 10년간의 커리어 설계하기, 대학 생활 동안 들을 과목 미리 정해보기 같은 과제가 주어졌다. 나는 과제를 하지 않았다. 과제를 해버리면 그 대단한 목적에 인생이 저당잡힐 것 같았고, 미래의 나만큼 확신할 수 없는 존재가 없다고 생각했던거 같다. 수업의 최종 과제는 자기가 찾은 인생의 목적을 커다란 단상에서 발표하는 거였다. 자기의 이야기를 분명하게 잘 말하던 사람들은 발표에서도 커다란 포부를 술술 말했다. 학교를 세우겠다는 사람도, 사회 구조를 바꾸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 모든 걸 확신이 찬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냅다 ‘모르겠다’를 시전했다. 내가 한 발표를 요약해 보면, “두루뭉술~ (모르겠음) 두루뭉술~” 정도쯤 된다. 그 자리에서 내 말을 듣던 사람들, 조금 비웃었으려나~ 그렇지만 확신할 수 없는 걸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나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모든 질문에 ‘모르겠다’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렇게 하면 생각이 없어 보이니까. 그래서 최대한 열심히 대답해 보기도 한다. 휴학하고 다큐멘터리 수업을 듣겠다는 나에게 오빠가 물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은 거야? 어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데? 너무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나름 열심히 대답했다. 음..아니?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거? 내 대답을 들으며 오빠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왜 이렇게 대화가 안되냐.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고 싶은 게 아닌데 왜 휴학을 해? (할 말 없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거야? (할 말 없음) 일이 이렇게 되면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나 진짜 아무 생각이 없는 건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내 머리가 너무 꽃밭인가. 그냥 확신할 수 없는 말을 퉤하고 뱉어 버릴까.
나도 선언하고 단정하는 말을 장황하고 포부 있게 할 줄 알던 때가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인생의 목적, 사는 이유나 죽지 않는 이유, 하고 있는 일을 하는 이유는 알지 못했다. 그 대신 ‘가치관’, ‘신념’, ‘지향’따위의 껍데기 같은 말들로 모르는 것들을 설명하곤 했다. 지금도 오빠에게 ‘대가리 꽃밭’ 눈초리를 받을 때면 그렇게 해볼까 싶다…
… 가도 아무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빠와 나는 같은 상식을 공유하지 않을뿐더러, 아무리 멋진 말들로 포장해도 내가 모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언제쯤 알게될까. 언젠가는 두루뭉술한 말 대신 확신이 찬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생각이 느리고 글도 천천히 쓰고 전체적으로 좀 굼뜨다. 그래서 종종 허허..하고 멋쩍게 웃기도, 다른 사람에게 생각 없는 사람 취급 당하기도 한다. 책을 많이 읽고 아이큐 테스트나 스피치 연습 같은걸 좀 하면 나아지려나?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빠릿빠릿 예리해지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하진 않는다. 그저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오늘도 생각하고 내일도 생각하기. 곱씹고 곱씹기. 정 안되면 여행이라도 가기.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에 대처하는 나의 굼뜬 자세다. 나에게는 천천히 고민할 하루가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