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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보름 Sep 23. 2019

#7휴남동서점북토크

소설 연재

골목 곳곳에 동네 서점이 늘어나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면, 서점이 책뿐 아니라 문화생활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확장된 것 또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점 대표들이 이런 트렌드를 마냥 좋아서 이끌고, 또 뒤늦게 따라가고 있는 건 아니다. 일종의 유인책이라고나 할까. 우선 손님을 서점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책 판매만으로는 먹고살 수 없으니까.  


영주도 처음에는 책만 팔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차츰 책 판매만으론 수지가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한 명뿐이지만 피고용인을 책임져야 하는 고용인의 입장이 되었으니 수지 생각은 더 해야 했다. 그래서 우선, 매주 금요일 저녁엔 신청만 하면 누구나 서점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북 토크, 공연, 전시 다 된다. 이때 서점은 공간만 제공하는 것이니 영주나 민준은 평소처럼 일하기만 하면 된다.


홍보는 돕기로 했다. 서점 밖 입간판에 포스터를 붙이거나 소셜 미디어에 신청서를 링크해둔다. 처음엔 이런 시도가 책을 읽으러 서점에 들른 손님들을 불편하게 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책을 읽으러 서점에 들렀다가 작가가 낭독을 하거나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히는 손님이 많았다. 책을 한 권 사거나 음료를 주문하면 5천 원만으로 누구나 즉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매달 둘째 주 수요일엔 북 토크를, 넷째 주 수요일엔 독서모임을 진행한다. 처음 6개월은 영주가 독서 모임을 이끌었지만 차츰 버거워져 자주 참여하는 분들에게 리더 역할을 제안했더니 모두 흔쾌히 수락해줬다. 지금은 두 세명이 돌아가면서 책을 고르고 모임을 이끈다.


북 토크 사회는 영주가 본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저자에게 묻고 싶은 것 다 물어가며 책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어 도전해 본 일이기도 하면서 ‘서점 대표가 직접 사회 보는 북 토크’라는 휴남동 서점만의 특징을 만들고 싶기도 했다. 북 토크 내용은 녹음했다가 녹취를 풀어 블로그와 소셜 미디어에 공개도 한다. 북토크도 북토크지만 내용을 정성스레 정리한 글을 저자들이 유독 좋아했다.


지금은 수요일과 금요일에만 이벤트를 열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도 노동의 한계를 초과하면 결국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는 걸 영주는 잘 알았다. 좋아하는 일도 이럴진대,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엄청 많이 해야 한다면? 일이 고역이 될 것이다. 일하는 재미를 계속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일의 양이 얼마나 적당한가이다. 그렇기에 영주는 무엇보다 영주가 해야 하는 일, 민준이 해야 하는 일이 한계를 넘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민준은 독서모임과 북 토크가 있을 때만 30분 더 일하면 된다.


북 토크를 준비할 때마다 긴장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북 토크 며칠 전부터 이걸 내가 왜 한다고 해서 이 고생인가 싶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말도 잘 못하면서..., 하며 후회막심이다. 하지만 막상 북 토크를 시작하면 언제 후회했나 싶게 재미있기만 하다. 특히, 책을 읽으며 궁금했던 점이나 좋았던 점을 작가에게 바로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영주가 이 일을 놓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어렸을 때 영주는 작가는 화장실도 가지 않는 줄 알았다. 왠지 삼시 세끼 챙겨 먹는 일에도 관심 없을 것 같았고, 유독 밤이 되면 어깨에서 우수가 우수수 떨어지면서 목 언저리에서부터 허리를 지나 발끝까지 고독감이 덩굴처럼 들러붙어있을 것 같았다. 고독에 지친 사람이 친절하기는 어려울 듯해, 영주는 작가라면 좀 괴팍해도 봐줄 마음이 있었다. 영주에게 작가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 통달한 끝에 운명에 이끌리듯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이기도 했다. 작가도 모르는 게 있을까? 없지 않을까? 작가에 대해 품은 이런 이미지를 영주는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북 토크를 진행하며 만난 작가들은 영주가 이미지화했던 것보다 훨씬 평범하고 친근했다. 작가들은 혹시 자신이 글에 재능이 있는지를 매일마다 의심하는 보통 사람일 뿐이었다. 어떤 작가는 술을 한 모금도 못 마셨고, 어떤 작가는 직장인보다 더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생계 걱정 없는 전업작가가 되기 위해 매일 일곱 시간씩 글을 쓴다는 한 작가는 북 토크가 끝나고 영주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번 해보는 거예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는 대신 우선 써보자는 생각이었어요. 한 번쯤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었으니까.”


영주보다 더 수줍어하고 쑥스러워하는 작가들도 많았다. 어떤 작가는 영주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말을 잘 못 해 글을 쓰게 됐다는 한 작가는 자기가 천천히 말하는 건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이니 양해 부탁한다며 독특한 방식으로 관객을 웃게 했다. 성급하게 주장하는 대신 느린 템포로 문장 하나하나를 뱉어내는 작가들을 보며 영주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들이 말을 하는 속도처럼 성급하게 굴지 말고, 어리숙해 보이더라도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살아가도 될 것 같아서.


내일 북 토크는 ‘책과 가까워지는 52가지 이야기’로 진행된다. <매일 읽습니다>를 쓴 이아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 책을 반쯤 읽었을 때 영주는 이아름 작가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 읽은 후 질문을 뽑아 봤는데 질문이 금세 스무 개를 넘었다. 질문지가 쉽게 만들어진다는 건, 영주가 작가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작가와의 일문 일답. (블로그 업로드 시간 오후 10시 30분. 요약본 인스타그램 업로드 시간 오후 10시 41분.)  


영주 제가 이 책을 읽고 좋았던 점을 말씀드리면요. 뭔가 책을 읽어도 성공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아서 좋았어요. (웃음) 저랑 코드가 맞는 것 같아서요.

아름 그 느낌이 정확합니다. (웃음) 책을 읽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다고 하잖아요.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요. 세상을 이해하게 되면 강해져요. 바로 이 강해지는 면과 성공을 연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강해질 뿐만 아니라 고통스러워지기도 하거든요. 책 속에는 내 경험으론 알지 못했던 세상의 고통이 많아요. 예전엔 못 보던 고통이 이제는 보이는 거죠.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크게 느껴지는데 내 성공, 내 행복만을 추구하기가 쉽지 않아 지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흔히 말하는 그런 성공에서는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이 우리를 다른 사람들 앞이나 위에 서게 해 주지 않는 거죠. 대신, 곁에 서게 도와주는 것 같아요.

영주 곁에 서게 도와준다는 말이 좋네요.

아름 네, 그래서 결국 우리는 다른 면에서 성공하게 되는 거예요.

영주 어떤 면에서요?

아름 조금 더 인간다워지는 거요? 책을 읽다 보면 자꾸 타인에 공감하게 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절로 성공을 향해 무한 질주하게끔 설계된 이 세상에서 달리기를 멈추고 주위 사람들을 보게 되는 거죠. 그러니 책 읽는 사람이 늘어나면 이 세상이 조금이나마 더 좋아질 거라고 전 생각해요.  

영주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분이 많아요. 작가님은 많이 읽으시죠?

아름 저 그렇게 많이 못 읽어요. 이삼일에 한 권정도 읽어요.

영주 그게 많이 읽는 건데요? (웃음)

아름 그런가요? (웃음) 다들 많이 바쁘시니까 틈틈이 읽을 수밖에 없잖아요. 아침에 잠깐, 점심에 잠깐, 저녁에 잠깐, 자기 전에 잠깐. 그런데 이 잠깐, 잠깐의 시간이 모이면 꽤 커요.

영주 한 번에 여러 권을 같이 읽는다고 하셨어요.

아름 제가 좀 산만해서 그런 것 같아요. 재미있는 책도 계속 그 책만 읽으면 지루해지더라고요. 그게 뭐든 지루한 건 싫으니까, 얼른 다른 책을 꺼내 읽어요. 책 내용이 머릿속에서 마구 뒤섞일 거라 생각하는 분도 계시는데 저는 그렇지 않더라고요.

영주 전에 읽던 책 내용이 다음에 읽을 때 잘 기억나지 않기도 할 것 같아요.  

아름 흠…, 전 책을 읽을 때 기억에 대해서는 크게 집착하지 않아요. 물론, 책 내용이 연결돼야 하니까 앞의 내용을 어느 정도 기억해야 하긴 하죠.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날 땐…, 사실 이런 경우는 별로 없어요. 대게 어느 정도는 기억나요. 그래도 기억이 안 나면 연필로 체크해 놓은 부분만 읽고 나서 다시 읽어나가기도 해요.

영주 기억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을 책에서도 하셨어요. 그래도 되나요? (웃음)

아름 (웃음) 전 된다고 생각해요. 책은 뭐랄까,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몸에 남는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아니면 기억 너머의 기억에 남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기억나진 않는 어떤 생각이 선택 앞에 선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거의 모든 선택의 근거엔 제가 지금껏 읽은 책이 있는 거예요. 전 그 책들을 다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도 그 책들이 제게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그러니, 기억에 너무 집착할 필요 없는 것 아닐까요?

영주 그 말씀을 들으니 안도가 돼요. 저도 지난달에 읽은 책 내용이 가물가물하거든요.

아름 저도 그래요. 아마 대부분 다 그럴 거예요.

영주 엄청 기억력 좋은 사람들은 빼고요.

아름 네.

영주 책을 많이 안 읽는 시대라고들 하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름 제가 이 책을 쓰면서 인스타그램에 처음 들어가 봤어요. 정말 놀랐어요. 누가 요즘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하는가 싶었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속도로 책을 읽어치우는 느낌이었거든요. 그걸 보고 책을 읽는 사람은 결코 사라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이 분들이 아주 특이한 분들이라는 거, 아주 소수라는 거 알아요. 얼마 전에 어느 기사에서 보니까 대한민국 성인 절반이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사실 책을 안 읽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문제다,라고 말하는 것에 조심스러운 입장이에요.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시간 여유든, 마음의 여유든 없어서 그러는 거니까요. 사회가 너무 빡빡하게 돌아가니까요.

영주 그럼 이 사회가 조금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기 전까진 책을 읽을 수 없는 건가요?

아름 흠, 그런데 좋은 사회가 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만 있긴 싫어요.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아져야, 그러니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세상은 더 빨리 좋아질 테니까요.

영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름 제가 해결할 수는 없을 거예요. (웃음) 음, 그래도 사람들에게 독서 욕구는 있잖아요. 읽긴 해야겠다는 생각은 많이들 하시는 것 같아요. 책은 읽고 싶은데 못 읽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영주 …

아름 원론적으로는, 이게 진리거든요. 처음이 힘들지 읽다 보면 계속 읽게 된다. (웃음) 그렇다면 처음 시작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분들을 위해 이 책을 쓴 거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웃음)

영주 아우, 이렇게 말씀하시고 말 거예요? 책에 타이머에 관한 이야기도 하셨잖아요. 책이 잘 안 읽힐 때는 타이머를 이용하신다고요.

아름 장난스럽게 말씀드려 죄송해요. 책이 잘 읽히지 않을 때는 먼저 지금 자기가 무엇에 가장 관심이 있나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우리 본능은 우리가 관심 있는 대상엔 한없이 흥미를 발휘해요. 요즘 퇴사하고 싶은 분들 많잖아요. 그런데 퇴사한 분들이 쓴 책도 많아요. 그럼 그 책을 읽으면 되지요. 이민을 가고 싶나요? 그럼 이민에 관한 책을 읽으면 되고요. 자존감이 낮아졌나요? 절친하고 관계가 끊겼나요? 우울한가요? 관련 책을 읽으면 돼요. 그런데 책을 안 읽다가 읽으려다 보니 집중하기가 어렵거든요. 자꾸 딴짓하게 돼요. 전 그럴 땐 스마트폰 타이머 앱을 맞춰놓고 읽어요. 기본은 20분. 타이머가 울리기 전까진 무슨 일이 일어나도 책만 읽자, 하고 생각하고 읽으면 돼요. 제약이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긴장이 우리를 집중하게 하는 거죠. 20분이 지났다면? 선택하시면 돼요. 오늘은 20분 읽었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으면 그만 읽고 즐겁게 다른 일 하시고요, 조금 더 읽자 싶으면 타이머 한 번 더 돌리면 돼요. 타이머 세 번만 돌려도 한 시간이에요. 우리 하루에 타이머 세 번만 돌려봐요. 하루 한 시간 독서는 이렇게 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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