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

by 감자발

80년 말 90년 초가 오락실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초등학교 시절 나의 열정 중 하나는 바로 오락실이었다.

등교하다가도 오락실에 들리고 하교할 때는 말할 것도 없었고 심지어 감기로 조퇴하고 집에 일찍 갈 때도

오락실에 들려 비몽사몽의 몸으로 황금성이라는 게임 한 판을 하면서 최종 보스까지 도달해서 클리어하고

집으로 가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오락실을 갔는데 동전 교환기가 없었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50원짜리 두 개가 쨍하고 떨어지는 동전 교환기가 없어진 것이었다.

오락실 요금이 인상된 것이다.

그것도 100퍼센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다른 종류의 게임을 2판 할 수 있었는데 이제 한 게임밖에 할 수가 없었다.

오락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로 적잖은 충격이었다.

덕분에 여러 가지 범죄도 그때 많이 생겨났다.

대략 세 가지 오락실 범죄가 성행했는데...


하나는 10원짜리 동전을 이용한 것이었다.

10원짜리 동전의 크기는 100원짜리 동전의 크기보다 살짝 작았다.

그 작은 크기를 메우기 위해 10원짜리 동전을 전기 테이프로 감았다.

딱 100원짜리 동전의 크기가 될 만큼 감았다. 그러고는 커터칼로 정교하게 잘라내면 100원짜리 동전만 한 크기가 완성된다. 그걸 오락기계 동전 투입구에 넣으면 100원짜리 동전으로 인식해 10분의 1 가격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10원짜리를 100원짜리로 둔갑시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100원짜리 동전 중앙에 구멍을 내는 것이었다.

구멍에 질긴 실을 연결해 동전 투입구에 넣고 오락기에서 코인이 올라가는 순간 다시 실을 당겨서 꺼내는 방법이었다. 물론 실이 끊어지거나 동전이 제대로 다시 빠지지 않아 헛수고하는 일도 허다했다. 하지만 숙련된 녀석들은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코인 수를 올렸다.


세 번째는 전기 라이터의 점화플러그로 동전 투입구에 ’틱틱’ 전기 쇼크를 주어 동전으로 인식하게 하는 방법이었다. 가장 화끈하고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 시절 오락실 주인들이 이런 행위들에 아마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두, 세 번째 방법에는 흥미가 없었고, 첫 번째 둔갑시킨 10원짜리가 몹시 궁금했다.

그날 정교하게 전기 테이프로 10원짜리 동전을 감았고 문구용 커터칼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서 100원짜리로 둔갑시켰다.


완성이 되자 테스트를 위해 집 근처에 있는 ‘인정 오락실’로 향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사장님은 다행히 TV를 시청하고 계셨다.

나는 남들이 별로 하지 않는 오락기계 앞에 앉았다.

10원짜리 동전을 천천히 넣었지만 다시 나왔다. 두, 세 번의 시도 끝에 동전 투입구에 10원짜리 동전이 들어갔다.


”띠리리링“

제대로 인식이 된 것이다. 신기했지만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신나게 게임을 즐겨야 하는데 등골이 오싹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사장님이 뒤에서 ‘야 이놈아!’ 할 것 같았다.

도둑질도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그날 오락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끝마치고 생각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무서워서 한동안 그 오락실을 안 갔지만 나의 오락실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다른 오락실로 가기에는 너무 길이 멀었고 결국 또다시 그 오락실로 향했다.


동전을 넣고 신나게 두들기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사장님이 뒤에 있었다.

날 보며 씨익 웃으시더니 갑자기 동전 투입구에 동전 세 개를 넣어 주시고 가셨다.

영문을 몰랐지만 덕분에 한참을 더 오락을 즐길 수 있었다.


며칠 뒤에 방문을 했을 때도 그다음에도 사장님은 어김없이 동전 세 개를 넣어 주셨다.

다른 아이들도 그렇게 동전을 넣어 주시나 살펴봤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이상했다. 왜 나한테만 동전을 넣어 주시는가?


한참을 게임에 집중하다가 몸이 찌뿌둥해 스트레칭을 하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러다가 천장이 보게 되었고 난 화들짝 놀랐다.

다양한 각도의 거울이 천장 여기저기에 매달려 있었다.

범죄 행위를 대비한 목적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CCTV가 흔하지 않은 시절 사장님의 지혜가 돋보이는 풍경이었다.

놀라움도 잠시 나는 다시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아뿔싸!! 그 천장의 거울들은 사장님이 TV를 보는 방에서도 여기저기를 비추고 있었다.

사장님은 그때의 나를 정확히 보고 계셨던 것이었다.

잡아 놓고 혼쭐을 내는 대신 날 볼 때마다 말없이 오락기에 동전을 넣어 주셨던 것이었다.

용기가 없어서 죄송하다고 하진 못했지만 너무 부끄러웠다.

그날 오락실을 나오면서 오락실 간판을 한참 쳐다봤다.


‘인정 오락실, 인정 오락실...’


왜 오락실 이름이 ‘인정오락실’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으로 가면서 난 수없이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장님 고맙고 죄송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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