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나는 줄곧 반장선거에 나갔다.
다섯 번이나 반장 선거에 나갔는데 단 한 번도 반장이 된 적이 없었다.
2,3,4학년 내리 반장 선거에서 탈락을 했다.
5학년에 올라가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자발아 반장 한 번 해봐야지~ 남들 다하는 반장을 왜 너라고 못하니?
반 아이들한테 반장 되면 짜장면 쏜다고 소문을 내봐 한번~”
나름 공약이었지만 살짝 비겁한 선거 활동을 하라고 부추기셨다.
난 반장 선거 전까지 반 아이들한테 내가 반장이 되면 아마 짜장면 한 그릇은 먹게 될 거라고
은근히 소문을 냈다.
물밑 작업은 끝났지만 정작 교탁 앞에 나가서 뽑아달라고 연설하는 것이 문제였다.
오락부장에 줄반장에 까불고 떠들고 나서는 걸 좋아해서 인기가 많은 편이었는데 왜 꼭
반장선거 때 교탁 앞에만 서면 몸이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져 입이 떨어지지가 않는지...
‘이번에는 기필코 반장이 되고 말리라‘
다짐을 하고 드디어 반장 선거날이 되었다.
칠판에 내 이름이 적히고 내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역시 내 입은 또 떨어지지가 않았고 어리바리 하다가 홍당무가 된 얼굴로 연설을 끝마쳤다.
‘후~ 연설도 못하는 놈을 누가 뽑아 주겠나?’
후회가 밀려오며 한숨이 나왔다. 연습 좀 더 할걸..
이번에도 떨어질 생각을 하니 집에 가서 어머니 볼 면목이 없었다.
개표가 시작되었다.
연설을 망쳤는데도 짜장면의 위력인지 내 이름이 꽤나 많이 호명되었다.
아니다 1위와 내가 거의 막상막하였다.
한 치 앞을 몰랐다.
‘뭐야 이러다가 정말 반장이 되는 거 아닌가?’
가슴이 콩닥 걸렸지만 곧 결과가 나왔다.
이변은 없었고 기대를 했던 내가 우스웠다.
짜장면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만 2표 차이로 반장에서 떨어졌다.
“그럼 민호가 반장, 민지랑 자발이가 부반장이다.
앞으로 학급을 잘 이끌 수 있도록 모두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 모두 축하한다.”
“선생님!!”
“왜? 자발이 무슨 할 말 있어?”
“반장이 아니면 의미가 없습니다, 다른 친구한테 양보하겠습니다.”
“어 그래? 그럼 경환이가 부반장 하면 되겠네~”
경환이는 얼떨결에 부반장이 되었다.
경환이가 교탁 앞에 나가서 소감을 말할 때도,
“자발이에게 정말 고맙고요...”
하면서 말을 이어 갔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허세를 부린 건지 반장이 아니면 정말 소용이 없었던 건지...
아무튼 내 학창 시절은 반장은커녕 부반장 한 번을 하지 못하고 끝이 나버렸다.
글씨를 제법 잘 쓴다고 맨날 서기만 시켰다.
말이 서기지 선생님들이 글씨 쓰기 싫으니 허구한 날 칠판 글씨를 쓰게 했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반장 선거에 나간다고 연설문 좀 써달라고 한다.
-(대부분 비슷한 인사말), 어쩌구 저쩌구... 공약 생략..
-오늘 선거에 나온 후보들 모두 반장이 된다면 열심히 한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저는 잘!! 하겠습니다.
우리 반을 전교에서 제일 멋진 반으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가져간 연필을 똑 부러뜨리며)
정말 똑 부러지는 반장이 되겠습니다. 여러분!!!
저를 뽑아 주십시오!!! -
적당히 유머도 집어넣고 실현 가능한 공약도 넣어서 연습을 시켜본다.
다행히 잘한다. 연설에 재능이 있다. 발성도 좋다.
그때의 나랑은 다르다. 은근히 기대가 된다.
역시나 반장이 되었다. 내가 된 것처럼 기쁘다.
그 후로도 반장선거에 나갈 때마다 몰표로 반장을 하는 아들을 보면 놀랍고도 기쁘다.
장인어른은 대통령감이라고 좋아하신다. 감투를 싫어하는 양반이 있을까?
내가 못 해본 걸 아들이라도 실컷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