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인력의 새로운 임무

by 예가체프

"여보 같은 고급 인력이 그런 일을 한다고?"


대기업 출신 경단녀, 고학력 백수, 고급 인력...

신랑이 곧잘 나를 놀리는 말이자,

나를 잘 설명하는 수식어다.


백수가 과로사한다고들 하지,

바쁜 나에게 새로운 임무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초등학교 2학년 된 딸아이의 간식 셔틀이다.


1학년 2학기 때부터 아이는 친구랑 분식점도 가고,

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시간 맞춰 학원도 잘 간다.

이제 굳이 엄마를 찾지 않는 독립적인 성향의 아이다.


그럼에도...

3월이 되니, 마음이 쓰인다.

아이가 먼저 엄마를 찾지 않아도...


2학년 첫날 하교 후, 담임 선생님이 너무 무섭다고 하더니

그다음 날부터 눈물 바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겨우겨우 달래서 학교를 보내긴 한다.

떼쓰는 일은 어린이집, 유치원 때도 없었고,

학교를 안 갈 수 없다는 걸 아는 엄연한 초등학생이기에

크리넥스 티슈로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가며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니 짠하다.

홈스쿨링을 할까 잠시 생각도 했을 정도다.

선생님 말씀을 너무 잘 듣고,

긴장도가 높은 아이인 걸 알기에

학원 가기 전,

그 긴장된 마음과 쌓인 감정을 풀어줘야 할 것만 같았다.


화요일, 목요일은 5교시 수업에다

방과 후 영어 수업도 있어서

그날은 간식도 먹고 학원에 가야 했다.


아방이가 있어서 다행이다.

오며 가며 걷기 운동도 좋지만

차가 있으니 시간 단축이 되어 부담이 덜하다.






비가 오는 날은 차 안에서 싸 온 간식을 먹기도 하고,

분식점 한 켠에 자리 잡고 앉아

나도 그 시절, 그때의 초등학생이 된다.





'똑부러지게 잘하고 있지만

가끔 얼마나 힘들까?'


'엄마가 있으니까 다 괜찮다고...

그런 말을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할 아이로 키우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가방도 들어주고 싶다.






지하 주차장을 내려가다 차를 긁어 먹어도 행복하다.





"여보 같은 고급 인력이 그런 일을 한다고?"


'내가 아니면 누가 하는데? 나도 회사 일 하면서 성과 내서 포상도 받고, 해외 출장도 가고 싶다고!!'



욱하는 마음에 받아칠 뻔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 내 마음 편하고자

내가 선택한 일이다.


이번에는 신랑도 나를 놀리려고 말한 건 아니다.

우린 입사 동기인 데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

아직 나를 고급 인력으로 여겨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아이의 간식 셔틀도, 감정 받이도 평생 직장은 아닐 터이고,

노트북과 책에 머리 박고 있을 엄마에게

잠시 쉼을 주는 이 시간을 당분간 잘 즐겨보자.




** TMI) 총회와 상담으로 뵌 담임 선생님은 교육관이 확고한 좋은 분이셨고, 4월이 되자, 아이는 화 내는 선생님의 성대모사도 할 만큼 단단해졌다.

무서운 선생님 밑에서 내내 긴장하고 있으면 공부가 되겠나 싶었는데 받아쓰기도 매일 100점, 수학익힘 책도 잘 푼다.

(버릴 수 없는 엄마의 공부 욕심... 선생님이 무서워서 공부가 더 잘 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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