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핸드폰에 42라는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 아래는 ‘체감온도 48도’라고 작게 써져 있었다. 처음 접해보는 숫자였다. 뉴스에서만 보던 날씨였다. 내 방은 꼭대기 층에 위치해 있었다. 햇빛은 내 방의 천장을 뜨겁게 달구었다.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도 방 안은 후덥지근했다. 방 안에서 가만히 있어도 난 땀을 뻘뻘 흘렸다. 하루에 한 번은 정전으로 2시간 동안 선풍기와 에어컨을 쓰지 못했다. 목에 젖은 수건을 걸고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손 선풍기를 켰다. 힘 없이 침대에 누워있고 싶었지만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어 불쾌함을 줄이기 위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땀을 많이 흘려 지쳤음에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앉아서 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 없었다.
이번 연도가 평소보다 더운 이유는 지구온난화 영향이 컸다. 옆나라 인도는 최고 기온 44도를 달성했다. 핸드폰도 심히 더웠는지 알고리즘으로 아시아 이곳저곳에서 4월 최고 기온을 갱신했다는 뉴스를 추천해 줬다. 에어컨과 선풍기 없이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날씨였다. 하루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 에어컨 없이 집에서 생활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외출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방글라데시의 문화, 종교적 이유로 반바지를 입을 없어 통풍이 그나마 잘 되는 얇은 긴 바지를 골라 입고 나간다. 햇빛이 없으면 비교적 시원했다. 하지만 꼭 하늘은 구름 없이 맑았다. 햇빛이 하루 종일 어딜 가나 따라다녔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내 몸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땀을 배출해 냈다. 5분 간격으로 이마에서 흐르는 땀과 코에 맺힌 땀들을 닦아줬다. 나름 운동을 좋아해 여러 운동을 했지만 최근하고 있는 ‘밖에 서있기’가 가장 힘들었다. 그래도 땀을 하도 많이 배출해서 다이어트 효과는 뛰어나 보였다.
어떻게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이 날씨에 금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니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땀을 수시로 닦고 집안이 밖보다 더워 햇빛 아래 있으면서도 물을 마시지 않는다. 저녁 6시쯤 아잔이 울리면 그때서야 물을 마신다. 순식간에 한 잔을 해치우고 한 잔을 더 따라 마신다. 물까지 마시지 않는 금식을 보며 존경스러우면서도 가끔은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좀비처럼 걸어 다니고 평소보다 더 화를 많이 냈다. 이런 금식이 과연 효과적일까라는 마음속에 꺼내지 못한 의문이 생겼다.
더우니까 가장 하기 싫은 것이 요리였다. 주방에 에어컨, 선풍기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밖의 열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어 최악의 장소였다. 인덕션을 켜기도 전에 이미 지쳐 있는 상태였다. 인덕션을 오래 키기가 무서워 요리가 단순해졌다. 계란 프라이, 스크램블, 참치 볶음, 스팸 이 정도가 끝이었다. 가끔 빨리 먹을 수 있는 라면을 먹었다. 요리를 하는 대신 배달을 시켜 먹고 싶지만 이곳은 대한민국도, 도시도 아니었다. 양아치라고 생각했던 ‘배달의 민족’, ‘요기요’가 이렇게 그리운 존재인지 몰랐다. 배달비가 만원이어도 시켜 먹을 자신이 있었다. 요리를 하기 싫으니 자연스럽게 밥을 먹는 횟수도 줄었다. 평소에 아침으로 콘프레이크를 먹었지만 설거지를 하기 싫어 먹지 않게 되었다. 4시쯤 간단한 간식을 먹었지만 이마저도 주방을 가고 싶지 않아 먹지 않았다. 최고의 식욕 억제제는 날씨인가 보다.
땀을 많이 흘리다 보니 물을 자주 마셨다. 물을 2시간 동안 마시지 않으면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하루에 2L짜리 물 한 병은 기본이었다. 여기에 커피에 음료수는 추가적으로 마셨다. 이렇게 많이 마셔도 땀으로 다 배출되었다. 특히 운동을 할 때면 더 심했다. 아무리 에어컨을 틀고 선풍기 아래에서 운동을 해도 팔 굽혀 펴기 100개를 채우기 전에 땀으로 샤워를 했다. 이마에서 땀이 빗방울처럼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국에서 한여름에 3km를 달릴 때보다 많은 양의 땀을 흘렸다. 너무 힘들어서 50 분하던 운동을 35분으로 줄였다.
그래도 밤이 되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습한 기운을 품고 있지만 내 몸의 땀과 만나 나를 시원하게 해 줬다. 10시가 넘은 늦은 밤, 정전이 일어나면 나는 방에서 나와 자연스럽게 옥상으로 올라갔다. 정전으로 인해 순수한 어둠만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이 어둠은 외로움이었다. 하지만 지금 난 이 어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변에 빛이 없기에 하늘의 별들이 뚜렷하게 보였다. 구름도 한 점 없었다. 어두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건물에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없기에 노래를 틀어 놓고 의자에 앉아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가끔은 내 눈으로만 담고 싶지 않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더움이 주는 유일한 행복이었다.
이런 곳에 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앞으로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었다. 단지 날씨 문제가 아니었다. 더위는 내가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어쩌면 무시하고 있던 문화적, 종교적 차이들을 극대화시켜 주었다. 일을 해결하는 방식, 여가를 보내는 방법, 전통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들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더워서 그런지 이런 차이가 짜증이 났다. 하지만 군대에서 다져진 사회생활로 난 웃고만 있었다.
그냥 다 무시하고 싶었다. 더위로 인한 짜증인지, 생각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차이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둘 다였다. 갈등으로만 비져진 짜증이 아니니, 난 더욱 나의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다. 나의 짜증을 해결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와 운동을 통해 몸을 피곤하게 만들고 깊은 잠에 빠졌다. 운동과 잠을 통해 나의 감정들을 무시하고 회피했다. 그냥 침대에 누워 더위가 내 머릿속에서 잊히기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