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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미비포유]

by 에밀리

고등학생 시절 엄청나게 감명을 받은 영화였다. 배우들의 연기와 색감과 풍경이 너무 좋았다. 나와 타이밍이 너무 잘 맞은 영화였다. 학업과 기숙사 생활 그리고 인간관계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내가 그래도 이 시기를 넘기면 분명 더 나은 시기가 오겠지 하고 믿어보게 만들어 준 영화였다.


왜 그땐 책을 읽어야지라는 생각이 안들었을까 모르겠지만 책을 사버린 뒤에는 단숨에 읽어나갔다. 그런데 작가의 섬세한 표현들이 참 예상치 못한 곳을 훅 찌르고 들어온다. 책장을 몇번이나 넘겼다가 다시 돌아와서 곱씹어서 읽었다. 황량하고 쓸쓸한 겨울을 지나고도 새로 싹을 틔우는 식물들의 일생을 작가는 ‘부단한 낙관주의’라고 표현한다. 또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온 같은 반 남자애에게는 이국적인 미지의 향기가 풍기고 카리스마 넘치고 아름다운 청년 윌에게는 차분하지만 값비싼 독특한 향기가 난다. 내가 밟아보지도 못한 땅에서 나고자란 이 외국인 작가는 참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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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간의 사랑이나 현실에 안주하지말고 대담하게 살라는 문구같은 것들이 내게는 약간은 클리셰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결국 우리가 말하는 것들의 본질은 결국 가장 클리셰같은 것들일 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나는 조금도 나쁘지 않았다.


장편 소설의 좋은점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무수히 많다는 것이다. 특히 동생과 싸운날 읽느라 루이자와 동생과의 갈등에도 이입이 아주 잘 되었다.



KakaoTalk_20210124_162842894.jpg 작가가 말한 향기가 뭔지 대충은 알 것도 같다


윌의 자살에 대해서는 아주 오랫동안 아주 많은 생각을 해야했다. 윌이 자신을 해침으로 엄마의 마음을 찢어지게 한 장면은 실제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져 새벽에 몇번이고 다시 찾아 읽어야만 했다. 그 일이 자꾸만 실제마냥 느껴져 그건 그저 온전히 글일 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삶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 윌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윌은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알기론 살아있다는 것은 가능성인데 그 가능성을 모두 포기하게 만들 정도의 사랑은 사랑일까 집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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