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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톤체호프-내기]

진정한 자유란

by 에밀리

15년동안 사람이 누리는 자유의 값은 얼마일까?

소설 속 부유한 은행가는 한 젊은이의 15년 인생에 200만 루블을 걸고 내기를 한다. 15년동안의 옥살이지만 세상을 볼 수 있는 작은 창문하나가 나있고 그곳으로 젊은이가 필요로 하는 모든 책과 물건이 제공된다. 물론 어떠한 대화도 나눌 수는 없다. 은행가는 젊은이가 5년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 역시 만약 작가가 독방에서 15년을 견딜 수 있다는 쪽으로 써나간다면 답도없는 낙관주의자라고 생각할 참이었다.


젊은이는 독방안에서 이 세상의 모든 책들을 섭렵한다. 몇년동안 몇백권의 책을 읽어치우던 사람이 신약성경 하나를 일년을 붙잡고 있었고 은행가는 그런 젊은이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후 15년이 채워지기 몇시간 전 젊은이는 편지 하나를 남기고 독방을 나와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 세상의 모든 지혜를 경멸한다는 편지를 남기고.


자유, 생명, 건강, 이 세상의 축복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은 다 헛되고 끝이 있다. 돈, 후손, 역사, 지혜 모든 것이 땅에 묻히면 생쥐보다도 나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것들 때문에 서로를 죽여살려 하루하루 연명하는 독방 밖의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경멸스러울만하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남은 은행가를 끝까지 그려낸 방식도 참 흥미롭다. 15년동안 점차 돈을 잃어 젊은이에게 줄 돈이 없어진 은행가는 결국 약속한 날 하루 전에 젊은이를 죽이러 독방에 찾아온다. 그리고는 잠들어있는 젊은이 앞에 놓인 편지를 발견하고 가슴이 뜨끔해진채로 돌아간다. 과연 무엇에 뜨끔했을까? 이 사람의 삶의 방식에 변화가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 환멸난다는 돈 때문에 사람 하나를 죽이러 온 사람이 과연 글 하나를 보고 얼마나 변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이 자에게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크진 않았을지.


자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 투표를 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것, 원하는 것을 사는 것. 무엇이 진정한 자유일까?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 자신만의 기준도 없고, 기준을 세우는 방법도 모르고, 기준을 세워야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데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유를 입증해줄 수 있을까.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고, 찾아야한다는 생각도 안하는 사람한테 두 다리가 있다는 것은, 그리고 두 다리로 걸어나갈 세계와 땅이 있다는 것은 자유일까 사치일까. 칼융은 무의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편소설이 비극적이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젊은이는 독방에 갇혀 몇백권의 책을 통달하고도 신약 하나를 1년동안 붙들고 있었다. 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대신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그 이야기를 붙들고.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내가 뭘 모르고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이들에게 진리를 강요하지도, 그들 위에서 어떠한 권세를 누리지도 않고 이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대신 죽었다는 그 십자가를 보았을까. 그렇다면 은행가의 말년도 다시 상상해보게 된다. 자유가 있는 누구에게든 공평하게 주어지는 삶의 두번째 기회를 붙잡았을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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