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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WIFE

전처와의 통화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by 한눈팔기

작년 겨울、 그러니깐 네달쯤 전의 일이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김치찌개를 먹으러 찌개집에 갔었다.

찌개가 나와서 팔팔 끓고 있을때 문득 오빠의 전화기에 진동이 울렸다.

그동안 어떤 전화가 와도 내 앞에서 태연하게 받았던 오빠인데、 그 전화만큼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급히 통화를 하러 밖으로 나가는 오빠 뒷모습을 멍하니 봤던 기억이 난다.

또 다시 태연하게 들어와 내 앞에 앉은 오빠、

오빠 이거 진짜 맛있다 하며 한 술 뜨려 할때 다시 울리는 진동.

그렇게 다시 한번 더 오빠가 자리를 떴고 이번엔 통화가 꽤 길어졌다.

그리고 다시 들어왔을때, 나는 오빠에게 말했다。

“또 다시 전화받으러 나갈거면 나 집에 갈거야”

그때 그 통화의 상대가 전처였다는 걸 직감했기에 누구냐고 묻지도 않았.

이런 내 태도에 오빠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이런 말을 할 내가 아니란걸 아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울리는 진동, 오빤 이번엔 내 앞에서 전화를 받았고

나를 의식했기 때문이었겠지만 무뚝뚝하고 귀찮은 목소리로 "응, 아니, 어, 어" 간단하게 대답하고 끊었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옷 속 깊숙이 넣어두었다.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게, 당연한거지만 조금 고마웠고

통화를 하는 오빠의 건성건성한 목소리와 태도에 마음이 놓였다.

불편하고 껄끄러운 둘의 관계를 확인한거니까.


그리고 4개월이 지난 얼마 전의 일이었다.

오빠랑 우리집 데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거실에서 TV를 보며 맛있는 안주에 와인을 곁들여

한창 신나는 대화가 이어지던 중이었는데

갑자기 오빠에게 전화가 왔고, 전화기에 뜬 상대방 이름은 MIN.

오래전부터 오빠의 카톡을 옆에서 힐끗거리고 보면서 전처가 그렇게 저장되었다는걸 알았다.

별안간 화들짝 놀랄만큼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통화 좀 하고 올게" 하고 내방으로 문을 닫고 휙 들어간 오빠.

통화는 짧았다. 그러곤 아무렇지도 않게 통화를 마치고 빠가 나왔다.

아이와 관련해서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란걸 알았지만 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세상 모든 여자들 중에서

오빠에게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게 할 사람이 있다면 그게 전처라는것쯤은 나도 안다.

그만큼 나쁜 감정을 남겼던 사람이 전처라는 것을 시도때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통화를 해야하는 일이 생기면 말섞기 싫고 불편할 거라는 것도 이해한다.

주중에는 아이를 오빠가, 주말에는 전처가 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일정이나 아이에 대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기분이 안좋았다.

그래서 오빠가 느낄수 있게 티를 냈다.

15분정도 오빠를 거실에 혼자 두고 내방에 들어가 한참동안 과제를 했다.

오빠가 두번 나를 불렀는데 모르는척하고 계속 방에 있었다.

오빠가 따로 숨어들어가 통화를 한게 기분이 나빴던걸까.

나에게 숨기는 무언가가 있어 보인게 맘상했던걸까.

나를 신경쓰고 배려해주느라 방안에 숨어들어가 통화를 한건데도 난 뭐가 그렇게 못마땅했을까.

그 당시 들었던 감정의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그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또 MIN 은 오빠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는 옷도 제대로 입지 않은 채로 현관으로 달려나가 전화를 받았다.

들려오는 대화 내용은 역시나 아이 문제였다.

재희에게 피부발진이 난 모양인지 그 이유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오빠의 태도는 뭔가 변명하는 듯했고

전처로부터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책망을 당하고 있는 중인것 같았다.

그래서 오빠가 어제 오늘 저렇게 기분이 다운되어 안절부절 못하나보다 생각을 하면서 안쓰럽다가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미묘한, 짜증섞인 감정이 올라와서 휙하고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거울만 보다가 나와버렸다.


나보다 나이가 6살이나 어리다는 전처.

오빠와 한 아이를 낳고 8년을 같이 살았던 전처.

그 생각을 하면 오싹하다. 그 시간은 어땠을까. 그 결혼생활로 어떤 행복과 기쁨을 오빠는 누렸을까.

아이를 함께 낳고 키우면서 얼마나 서로를 의지했을까.

물론 지금도 아이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를 의지하고 있기에 틈만나면 통화를 하고 카톡을 하고 있을테지.

그런 시간들을 거쳐온 오빠가 내가 알고 있는 오빠가 맞을지 모르겠다.

수많은 이유들로 싸움이 잦아졌다고 했고, 그끝에 먼저 이혼을 요구했다던 전처.

그래놓고는 뒤늦게 후회하며 울면서 전화를 해왔다는 전처.

오빠의 설명 속에 그녀는 어리고 철없는 이기적인 여자인데,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일까.

그녀가 알고 있는 오빠는 어떨까.

8년이라는 세월을 살을 맞대고 산 그 여자는 오빠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내가 보고 있듯이 다정하고 순하고 화가 없는 보기드문 남자가 맞을까.

아니면 여느 평범한 남자들처럼 가족을 등한시하고 나가서 놀기바쁘고

그러다가는 여자쪽의 이혼 요구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런 철부지 애 아빠에 불과할까.


친구들이 말하길 아무리 합의이혼이라 하더라도, 오빠와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면

이혼결정문을 받아서 읽어보라고 했다.

그치만 아직 그걸 요구할 권리가 나에게 있을것 같진 않다.

하지만 문득문득 참을수 없이 궁금해질 때는 있다.

이혼의 이유에는 어떤 것들이 더 있을까.

오빠가 설명해준 이유들 중에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것은 거짓이고 어떤 것은 오빠만의 해석에 불과할까.



전처,

오빠의 뒤에 그림자처럼 가물거리는 이여성의 정체는

늘 나를 불안하게, 찜찜하게, 한없이 비루하게 만든다.

샤워하러 들어간 오빠의 핸드폰 속에 전처와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찾아 몰래 읽었던 그 날의,

심장이 터질 것 같던 감정의 짜릿함을 자꾸만 다시 겪고 싶게 만든다.


내가 뭘하고 있는건지, 몰래 다른 사람 핸드폰을 뒤적거리는 비겁한 사람은 분명 내가 아닌데 하면서도

오빠가 샤워를 마쳐가는 소리가 들릴때까지

더 많은 대화를 게걸스럽게 읽으려 하는 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오빠의 전처에 대한 무덤덤하고 성의없는 태도에 안도하면서도,

이렇게 끊임없이 그녀의 전화와 카톡을 의식하고 있는 나.


둘 사이의 무미건조한, 단답식의 대화들을 읽고나서도 지치지 않고 자라나는 호기심.

오빠에게는 다 끝난 존재일텐데 나에게는 아직도 미지의 존재.

전처.

나와는 전혀 무관한 한 여자의 존재를

나는 나혼자만의 감정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다루어 나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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