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다른 느낌, 다른 추위
상하이는 서울보다, 한국에서 제일 따뜻한 제주보다 더 남쪽에 있습니다. 처음엔 따뜻한 남쪽이니, 이곳의 겨울은 한국보다 따뜻할 거라 생각했지요.
첫해 겨울은 그다지 춥다고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온이 0도씨 이하로 내려가는 날도 거의 없어 꽁꽁 얼어붙은 길바닥도 없고, 펑펑 내리는 눈은 더더욱 볼 수 없었거든요. 추위를 무척이나 타는 저는 상하이가 겨울을 보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짐을 정리하고 오리털 점퍼, 제대로 된 모직 코트 한 장 없이 상하이로 넘어온 저는, 패딩 점퍼와 발목이 휑한 청바지, 스니커즈 차림으로 그 해 겨울을 보냈습니다.
처음 맞은 봄, 4월 마트 계산원의 셔츠 밖으로 삐죽 드러난 빨간 내복에 전 깜짝 놀랐더랬습니다. 4월이라 절기로도 이미 봄이기도 했고,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었거든요. 실내가 실외보다 조금 더 춥긴 하지만, "에이 이 계절에 내복은 심하다" 싶더라구요.
그러나, 딴스 但是.
뼈 마디를 스며드는 습기 가득한 상해의 추위에 저의 겨울도 점점 변해갔습니다.
5년 차 겨울, 이제 밖에 나갈 때 오리털 점퍼 하나는 꼭 걸쳐야 했습니다. 스물 스물 옷 속으로 스미는 차가운 습기를 막아주는데 촘촘한 오리털이 최고지요.
10년 차 겨울, 내복을 입으면 따뜻하긴 할 것 같은데, 왠지 늙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소매도 짤뚱, 다리도 짤뚱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얇은 내복을 , 그것도 겉으로 잘 비치지 않는 누드 칼라로 구매해서 몰래 입기 시작했습니다.
15년 차 겨울.... 쯫쯫. 이젠 한국에서 겨울을 날 때 보다 더 요란스럽습니다. 입추만 되면 시려오는 무릎 때문에 타오바오를 통해 각종 방한 용품을 구매하는 것이 겨울 시즌 취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매년 10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내 피부인양 늘 내복과 한 몸입니다. 그 해 4월, 슈퍼 계산원처럼 가끔 셔츠 밖으로 기억 나올 만큼 충분히 긴 길이로만...
관광차 상해를 며칠 거치는 이들에게 상하이의 겨울은 포근하게 느껴지지 모르지만 눅눅한 습기에 이미 익숙해진 사람들의 뼈마디에는 으슬 으슬 기분 나쁘게 추운 계절입니다. 혹시 늦은 봄이나 초가을 상해를 찾았을 때 소매나 바지 부리 아래로 삐죽 인사를 하는 수줍은 내복을 만나더라도 계절이 어느 때인데 내복이냐는 타박일랑 넣어두세요.
다 필요가 있어 그 자리에 있는 친구들이더라구요. 저도 겪고 나서야 알았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