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부장 Aug 19. 2020

나와 중국의 커피 성장기

공작일보 네 번째 이야기 

아침잠이 많은 저는 졸린 상태로  출근해 커피를 한 잔 마셔야 겨우 정신을 차립니다. 

요즘은 맛있는 가루 커피를 적은 물에 짙게 녹이고 생우유를 듬뿍 넣은 나만의 라떼를 좋아하지요. 우유맛으로 먹는지 커피 맛으로 먹는지는 저도 가끔 헷갈리지만, 제게 아침 커피의 효과는 대단합니다. 



카페인 주입이 끝난 후에야 손에 늘어져 있던 일들이 착착 제대로 돌아가거든요.



직장에서 막내였던 시절 제 커피는 원투쓰리 제조법으로 만든 달달 커피. 아저씨들이 젤 좋아한다는 커피 한 스푼, 프림 두 스푼, 흰 설탕 세 스푼의 기적의 제조법이죠. 물은 종이컵 2/3 로만 적절히. 많이 졸린 땐 컵의 절반만. 그때는 지금의 저처럼  아침이 힘겨우신 실장님을 위해 커피를 맛있게 타는 것이 제 큰 임무 중 하나였지요. 훗날 제 뒤를 이어 실장님의 커피를 준비하던 후배가 생겼는데 실장님은 제가 타주는 커피가 제일 맛나다며 그 뒤로도 제 이름을 자주 외치셨지요. 그렇게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게 즐거운 경험이었어요. 갑자기 기억나는, 왠지 모를 이 뿌듯함은 뭐람요.  


원투쓰리 조제 커피를 대체할 커피의 혁명 , 노랑 커피가 드디어 등장했으니.... 그 뒤로 자연스럽게 커피 프림 설탕 종지 세트는 사무실에서 자취를 감췄고.  커피 숟가락을 니가 씻니 내가 씻니 막내들끼리의 살벌한 신경전도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요. 지금 제 살의 팔 할은 어쩌면 이 아이 때문 일지도요.


노랑 커피는 중국인들에게도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상하이가 아닌 3선 도시에 위치한 공장 사무실에서도 노랑 커피가 잔뜩 들어있는 노란 박스는 어디에서나 저희를 맞아주더라고요. 저희 직원 중 한국 회사인 우리 회사로 출근 후 처음 이 커피 믹스를 만난 한 친구는 아침 점심 그리고 퇴근 전 , 마치 밥을 챙겨 먹듯 커피믹스를 마시고 있는데요. 특이하게도 유리로 된 텀블러에 물을 잔뜩 채워 넣고 한포를 넣어 흔들어 마십니다. 혀 끝에 느껴지는 씁쓸한 커피맛, 부드러운 크림의 맛, 그리고 무엇보다 달짝지근한 설탕 맛의 조화를 아주 즐기는 듯해요. 그 결과 원래도 둥글했던 뱃살이 점점 산처럼 커지는 중이긴 하네요. 


물론 중국인들도 점점 원두커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커피를 즐기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10여 년 전 업무차 방문 한 광동 쪽 지방 공장에서, 사장이 특별히 해외에서 직접 구매해왔다며 좋은 커피를 한잔 하겠다고 묻더군요. 커피 카페인에 이미 중독이 돼있던 저는 달짝지근한 커피가 너무 그립긴 했지만 아쉬운 대로 원두커피 라도 마시자 싶었는데요, 세상에.


투명한 유리컵에 (중국에서는 일반 차를 일반 투명 유리컵에 잘 따라 마십니다)  사장이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좋은 커피 원두가 그대로 뜨거운 물에 퐁당 빠져있었습니다. 원두를 사 왔다는 거래처 사장이나 커피를 준비해준 비서 아가씨  둘 다 자기네는 커피를 즐기지는 않는다며, 맛있게 마시라며 보람찬 얼굴로 저를 계속 바라보고 있더군요.  보통 저희가 즐기는, 잘게 부서진 커피가 온몸을 통과시켜 내보낸 향긋한 액체가 아니라 로스팅한 커피의 원두를 뜨겁게 씻어낸 물. 참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하긴 사실, 커피에 대해 부족한 지식은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선물을 해드리고 싶은 분이 커피를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제가 아는 제일 좋은 커피판매점 별다방에 가서 제일 좋은 원두를 달라고 했습니다. 직원이  "다 갈아드릴까요? "라고 묻더군요. 원두를 갈아서 커피를 뽑는 것만 알았지 커피의 신선도나 조건 등을 잘 몰랐던 저는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 옵션을 제시하는 건, 어떤 선택을 해도 취향의 문제일 뿐 무리가 있는 결과가 나오진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다 갈아 놓으면 매번 커피를 갈지 않아도 되니 편하실 테니,  '네  다 갈아주세요'라고 했지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당시 제게 커피 선물을 받으신 분은 적잖이 당황하셨던 것 같습니다. 커피를 좋아하신 만큼 간단한 그라인더도 갖고 계셨을 테고 매번 필요한 만큼 커피를 갈아서 드셨을 텐데 이걸 언제 다 마시나, 하셨을 겁니다. 


이제는 스타벅스가 동네 대표 커피숍 마냥 상하이 골목골목 없는 곳이 없고, 주인이 개성을 살려 오픈한 작은 커피숍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기차역이나 공항에서  긴 여행의 출발 전 커피 한 잔을 위해 끝고 없이 줄을 서 있는 광경을 흔히, 아니 매번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정신을 차리고 일을 해야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커피와 함께 해야 하는 저도 삼사십 분이 넘게 기다려 커피를 받아 들고 겨우 겨우 자리에 앉은 적이 여러 번입니다. 요즘은 무인 주문 시스템이 생겨 조금 당겨지긴 했어요.  택시를 타고 기차역에 내리는 순간 앱을 통해 주문해 두고  역내의 각종 업무를 마친 뒤 픽업을 하니 시간이 딱 맞더라고요. 


이젠 저도 원두커피의 매력에 조금씩 빠지고 있습니다. 아직 산지에 따른 맛의 차이나 발음하기도 힘든 원두의 종류는 잘 알지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향 정도의 선호도는 갖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 주변에 나타난 변화.

커피 좀 그만 마시고 몸에 좋은 차를 마시라며 매일 잔소리를 해대던 우리 회사 재무 할머니.

늘 두통에, 감기, 잦은 기침 등에 빌빌 거리는 저에게 국화차며, 민들레 잎차 며 좋은 차들을 사다 주시며 몸을 생각해서 커피를 줄이라고 얘기를 하셨는데요.



요즘 곁에서 보니, 메이가 사장님 커피를 준비할 때 가끔 한잔씩 본인의 것도 부탁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착한 메이는 커피를 조금 더 만들어 늘 맑은 초록 차가 담겨있던 투명한 유리컵에 담습니다. 그리고 물을 조금 더 부어, 처음 커피의 세계에 들어온 재무 할머니의 심장이 너무 뛰지 않게 커피를 옅게 희석시켜 전해줍니다. 음식 선택에 깐깐하고 편식이 심한 재무팀 출납 언니도 호기심에 남은 커피를 조금씩 따라가는 모양입니다. 


차 (茶)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중국인들에게 그만큼 커피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마시면 가슴이 콩닥콩닥 거리는 박카스나 자양강장제 대신 잠을 깨는 용도쯤으로 생각했던 커피.  이제는 제 모든 시간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달짝지근한 커피믹스 건, 얼음이 동동 떠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아아"라 하던가요) 이건, 우유맛인지 커피맛인지 모를 라떼 이건.  

잠깐 쉬어가려는 당신과 함께 해줄 당신만 소중한 커피이길 바라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