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o Apr 08. 2021

똑똑한 호구로 거듭나기

감당할 수 있겠어요?

호의가 계속되면 호구된다는 말이 한 때 유행하며 너도 나도 호구가 되지 않게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호구가 되는 건 수치스럽고 치욕적인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갱이라 칭하며 호구가 되는 건 바보짓이며 세상은 점점 더 깨어있으라고 말한다. 특히 직장인으로서는 업무를 하면서 이런 마음이 더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어떡하면 내가 일을 덜 할 수 있나, 어떡하면 타인의 업무를 떠맡지 않을까 그 방법을 연구하며 적절한 거절 방식을 고안해내면 희열을 느끼곤 했다.



처음에는 계약직으로서 정규직과 업무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내 권리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그 저변에는 사실 절대로 남보다 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그리고 그냥 내가 조금 더 편하고자 하는 이기심이 깔려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내 이기심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다양한 부서에서 일하며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모두가 계약직인 부서에서 일할 때가 있었는데 분위기가 조금 네 일, 내 일을 따지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거기 편승해 나조차 누가 누가 더 일을 많이 하고 있나, 쟤는 종일 노는 것 같은데 나 혼자 왜 이렇게 힘든가 매일 시시콜콜 업무량을 따지며 살았다. 당연히 동료와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하게 되면 불만이 표출되고 갈등으로 이어져 회사에서 골칫덩이 직원으로 낙인찍혔다.



무사 공평주의. 모두 공평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같은 월급 받는데 누구는 놀고 누구는 죽어라 일하는 상황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고 마치 정의를 실현하는 사도처럼 이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엉터리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내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편한 일, 쉬운 일만 골라하는 직원이 눈엣가시였다. 

왜 그렇게 남이 하는 일은 쉬워 보이고 내가 하는 일은 힘들어 죽을 것 같을까? 아마 겪어보지 못해서 가질 수 있는 생각 같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쉬워 보였는데 막상 내 일이 되면 그때부터 어려운 일이 되고 만다. 그냥 내가 편하고 싶은 이기심을 받아들이자.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서 과연 무엇이 나를 더 편하게 하는 것인가 분명히 고민해 봐야 한다. 



어리석게도 업무분장으로 동료 간 분쟁을 만들고 관계가 파탄 나면서 깨달은 바로는 그런 불편함보다 차라리 내가 일을 조금 더 하고 마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일은 어긋나도 감정이 없어서 바로 잡을 수 있는데 관계는 한 번 어긋나면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다. 계속 그 불편함을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가는 것이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고 그 사람이 내 목줄을 쥐고 있을지 또 어떻게 알겠는가. 사소한 일 하나로 그런 불안한 미래를 초래하기엔 차라리  내 능력이 너무 뛰어나다고 믿어라. 



다만 계속해서 나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은 손절할 것이며, 호구력은 내 마음이 동하는 정도로만 발휘하면 된다. 그리고 한 가지 팁은 이런 호구 짓에도 주위에는 분명 이를 감사히 여기는 사람이 존재할 것이다. 그 사람이 찐이다. 그들은 기꺼이 당신의 편이 되어 줄 것이며 언제든 나를 돕고자 할 것이다. 내 마음이 궁핍하면 남을 배려하면서도 스스로를 호구라 여길 것이고 내 마음이 부자면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선인이 된다. 


이전 03화 주위에 이상한 사람이 가득하다면 색안경을 벗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